[트루스토리] 이강욱 기자 = 박창진 사무장이 ‘또’ 쓰러졌다. 한번도 쓰러진 적이 없는데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살인적 스케줄에 대한 논란은 일단 뒤로 하자. 대한항공 측이 죽어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하는데, 무조건 단 한번의 오류를 가지고 대한한공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박창진 사무장이 느꼈을, 지옥 비행과 같은 일이 ‘또 다시’ 반복되면 이는 박창진 사무장을 의도적으로 골탕 먹이기 위한 사 측의 전방위적인 행보가 맞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한항공 전 부사장인 조현아의 ‘집행유예’라는 현실이 연관고리로 얽히고 설켜 있다. 조현아는 분명히 석방되고 대한항공의 ‘메인’으로 컴백한다는 것이다. 박창진 사무장이 지옥 같은 스케줄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대한항공이 그동안 보여줬던 그림을 보면 오직 ‘조현아’를 살리기 위한 맹목적 충성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군의 생명은 군기 확립인 것처럼, 대한항공의 미래를 위한 생존법 역시 보스 그리고 그 보스의 딸에 대한 철저한 고개 숙임에서 출발한다. 군기가 무너지면 전투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조현아가 없다면 대한항공이 무너지는 그런 ‘신앙적 믿음’이 대한항공 일부 경영진들에게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박창진 사무장은 늘 대중의 시선과 달리 누군가에 의해 ‘선인’에서 ‘악인’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박창진 사무장이 회사에 또다시 출근한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근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솔직히 회사 측에선 제발 ‘나가주길’ 바라는 마음이 클 것이다. 박창진 사무장만 제 발로 회사를 걸어서 나간다면 대중은 ‘땅콩 회항’ 사건을 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냄비 근성이 원래 그렇고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그렇다. 머리를 숙이지만 며칠 후면 머리를 들어도 될 만큼 사회적 ‘논란’은 언젠가 까마득한 먼 과거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결코 그런 시간의 흐름으로 넘길 일은 분명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피해자만 피해자일 뿐, 가해자는 늘 ‘승리자’이고 ‘점령군’이다. 상관들이 몹쓸짓을 한다고 해도 조직이 무너지나?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의 갑질은 승리의 역사다. 우리 사회의 을들은 늘 죽은 듯 쉬쉬하며 산다. 돈이 없는 게 죄다. 경제력만 뒷받침 된다면 당장 욕 한바가지 퍼부어주며 때려치고 나오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하루살이처럼 살다보니 돈 많은 가해자보다도 ‘돈 없는’ 피해자가 더 고통을 받고 있다.

비극은 늘 이런데서 출발한다. 조현아가 대한항공 부사장이 아닌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난 일반인이었다면 감히 박창진 사무장에게 그런 볼품없는 행동으로 대들었을까. 조현아 뒤에는 집행유예로 빠져나올 만큼 엄청난 보이지 않는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갑질’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조현아가 구치소에서 이러쿵 저러쿵 했다는 이야기는 굳이 여기서 썰을 풀 필요는 없지만, 너무나 상황이 웃기지 않는가. 박창진 사무장은 밖에 있지만 ‘감옥’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반면, 조현아는 감옥에 있지만 ‘자유로운 영혼’이다. 대한민국이 미쳐가는, 아니 이미 미쳐있는 이유다.

단언컨대 결코 갑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갑질에 대한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악의 주범인 ‘갑질’을 너무 약하게 처벌해 되레 화(禍)를 부른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창진 사무장이 또다시 일어나면 그는 대한항공으로 출근해야 한다. 마치 이등병이 첫 휴가를 마치고 군에 복귀할 때 느끼던 그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제2의 박창진 사무장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조현아는 반드시 구속수감 되어야 한다. 그녀가 풀려 해방을 만끽하게 되는 순간, 박창진 사무장은 진짜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를 보호해주진 못한다. 그게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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