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발언 놓고 이틀째 시끌...자애로운 국모님, 알고보니 욕심 많은 퍼스트레이디?

육영수 여사에 대해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욕심이 많고, 길러준 사람에 대해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 = 트루스토리 DB

[트루스토리] 김수정 기자 = 김종필 전 국무총리 발언은 인터뷰 내용을 조목조목 뜯어봐도 ‘진실’에 가깝다는 평가다. 김종필 전 총리는 왜 ‘육영수’ 여사에 대해 이 시점에서 입을 열었을까.

그리고 박근혜 육영수는 만약 정권이 바뀌게 되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박근혜와 육영수 뿐 아니라 박정희와 육영수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증언’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60대 70대 어머니들은 ‘육영수’ 여사에 대해 무척이나 관대하고 너그러웠다. 실체를 모르다보니 ‘육영수 여사’는 인자한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리고 여전히 신앙처럼 육영수 여사를 존경하기도 한다.

때문에 지난 대선에선 육영수 여사를 좋아했던 ‘엄마 지지층’은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박근혜를 뽑았다.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한 이유였지만, 육영수 여사처럼 박근혜 당시 후보가 ‘엄마의 이미지’로 국가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철저히 믿었던 것이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점을 알았다던 것 같다. 그래서 시대에 맞지 않게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다. 청와대행을 위해 이미지 정치를 시작했던 셈이다. 어머니 육영수는 박 후보에게 대선 마케팅을 위한 최고의 콘텐츠였던 것이다.

육영수 여사는 1974년 광복절 행사 도중 암살을 당한 비운의 영부인이다. 어머니가 그해 그렇게 세상을 떠난 뒤 박 대통령은 ‘청와대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권력의 맛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해 9월 16일 젊은 박근혜는 일기에 “책임, 너무나도 무거운 책임”이라고 적었다.  육영수 여사의 비극적인 죽음이 박근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셈이다.

어머니가 암살을 당한 뒤 아버지 박정희와 함께 공식 행보에 나섰던 1974년 9월부터 10.26 직전까지, 박근혜는 퍼스트레이디로 현직 대통령 임기와 맞먹는 기간 동안, 정치적으로 부쩍 성장했다. 하지만 최태민-최순실-정윤회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당시 박근혜의 행적으로 다시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감추고 싶은 비밀은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됐을 것이라는 의미다.

‘희대의 사기범’ 최태민도 1974년 등장했다. 그는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뒤 청와대로 위로의 편지를 보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육영수 여사가 최씨의 자신의 꿈에 나타나 ‘박근혜를 도와주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즉, 최태민은 모친을 잃은 박근혜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영적 능력’을 통해 육영수 여사를 재회할 수 있도록 박근혜의 눈과 귀를 멀게 했고, 이때부터 비극은 시작됐다는 것이다.

육영수 여사. 대중들은 아직도 육 여사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전혀’ 모른다. 그저 우리 어머니 세대들에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우리나라 영부인 중 가장 우아했던, 경제개발과 독재라는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한복을 즐겨 입으며 주로 봉사활동에 힘썼던, 따뜻하고 사려깊은 이미지의 현모양처의 전형적인 모습의 영부인우로 기억되고 또 평가받고 있을 뿐이다.

▲ 사진제공 = 포커스뉴스

하지만 지난 14일 시사저널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사촌형부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처제(박근혜 대통령)는 하야를 죽어도 안 할 거다. 그 고집을 꺾을 사람 하나도 없다”며 “옛날부터 내 이야기를 전혀 안 들었던 친구”라고 했다. “육영수 여사의 나쁜 점만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육영수 여사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글로 서술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놀부의 아내’처럼 육 여사는 나쁘게 묘사됐다. 물론 ‘농담’이라는 JP의 설명이지만.

육 여사는 그간 ‘자애로운 국모’로 평가를 받았다. “아내(육영수)는 청와대의 야당”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 다름 아닌 박정희의 입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한 정치전문가는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년 시절과 어머니(육영수 여사)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런 은폐의 역사 속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파문 속에서, 박근혜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에 대한 또 다른 진실이 쏟아져 나왔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라는 이름으로 왜 역사교육을 황폐화시키려 했는지 실체가 드러난 셈이다.

한편 육영수 여사는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배화여고를 마치고 옥천여중 교사로 근무했다. 한국전쟁 발발 뒤, 부산에서 피란 중일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나 결혼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재혼, 육 여사는 초혼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1961년 군사쿠데타에 성공한 뒤 1963년 10·15총선거에서 6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연임됨에 따라, 육 여사는 무려 11년 동안 영부인 역할을 했다.

사진 = 육영수 여사 서거 당시 신문에 보도된 사진 캡쳐 / 트루스토리 DB

김종필 사진제공 = 포커스뉴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