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소설 '먼바다'를 이야기하다... "50대 중후반에 행복해하며 쓴 연애소설"
소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작가 공지영은 섬진강 가에 피어난 홍매화 같았다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우리 시대의 인기 작가 공지영이 신작 소설 『먼바다』(해냄출판사)를 냈다.

『먼바다』는 한 여자가 우연히 페이스 북으로 연결된 첫사랑의 남자를 40년 만에 뉴욕에서 해후하는 이야기다.

공 작가는 소설을 내고, 지리산 아래 마을에 칩거하느라 모든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뉴스퀘스트는 『먼바다』 출간 이후 처음으로 공 작가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3월 12일 오후 서울 숭례문 근처의 한 카페에서, 문학평론가인 하응백 뉴스퀘스트 문화에디터가 진행했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 12일 서울 숭례문 근처의 한 카페에서 뉴스퀘스트와 인터뷰 하고 있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 12일 서울 숭례문 근처의 한 카페에서 뉴스퀘스트와 인터뷰 하고 있다.

"요즘에 20대였더라면 데뷔도 못했을 것"

하: 안녕하세요. 서울에는 언제 오셨어요?

공: 어제 왔지요. 너무 예쁜, 상처입을 정도로 예쁜 마을에 있어서 오기가 싫더라구요. 섬진강의 찰랑거리는 물결이 보이고, 공기도 좋고, 아예 가서 살까 생각 중입니다.

하: 공 작가의 소설적 스펙트럼이랄까, 경향이랄까 이런 게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적 요소가 강한 소설, 사회 고발적인 요소가 강한 소설, 서정성이 강한 우리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 등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소설은 세 번째에 해당하는 연애소설이죠? 50대 중후반에 들어서 연애소설로 간 이유는 뭘까요?

공: 아, 모르겠어요. 정말 항상 질문 받을 때 두 가지가 곤혹스러운데요. 첫 번째가 “이 소설은 그러니까 무슨 소설입니까?” 이게 너무 어렵구요. 두 번째는 “왜 이걸 썼어요?”입니다. 이 둘은 마치 정말 “왜 그 사람을 사랑했어요?” 라는 거 보다 더 본원적인 질문인 거 같아요. “왜 살아요?” 라는 질문 같아요.

하 : 그러니까 그냥 쓴 거네요.

공 : 그냥 쓴 거예요. 네. 근데 한 번도 그냥 쓰지 않은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의 결과를 보고 제가 마치 무슨 ‘정의’를 위해서 썼고, 제가 무슨 어떤 ‘주의’로 해서 썼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너무 힘들어요. 그러면 벽서를 쓰거나 대자보를 썼겠지요.

하: 흘러 넘쳐서 쓴 거네요.

공: 그런지도 모르죠. 마음 가는대로 썼다고나 할까? 제가 좀 그래요. 너무 속 편한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제 마음대로 산 거 같아요. 제 마음대로 살았는데 너무 보답을 많이 받았지요. 제 마음대로 산 거 치고는 보답을 많이 후하게, 후하게 점수를 받았지요. 그런 거 같아요.

하: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말이죠? 공 작가의 책이 지금까지 모두 1200만부 정도가 팔렸다고 하던데요.

공: 그 정도 될 거예요.

하: 단행본으로는 1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집류를 빼면...

공: 그러니까.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죠. 너무 감사한 거죠. 그 다음에 오는 부작용은 그 다음 얘기고. 늘 먼저 생각하는 건 저는 너무나 운이 좋았고, 우리나라의 문화비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는 때에 데뷔를 해서, 시대와 잘 맞았던 거죠. 제가 잘 난 것은 아니고요. 제가 만약에 60년대 이전에 태어났다면 벌써 도태되었을 거고, 요즘에 20대였더라면 데뷔조차 못했을 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행운이죠.

하: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최초의 작품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였죠.

공: 네. 맞아요. 그것도 아주 이름 없는 출판사에서 나왔죠. 그 작품이 1993년 2월, 설날에 나왔는데요. 베스트셀러에 처음 올라갔던 게 11월. 그리고 『고등어』가 94년 5월에 나오면서 함께 베스트셀러에 올라갔고, 그해 『인간에 대한 예의』가 나와 3권이 동시에 베스트에 올라갔죠.

공지영 소설의 서사성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하: 이번 소설 『먼바다』이야기를 해보죠. 이 소설은 굉장히 서정성이 강해요. 소설 전체가 한 편의 시랄까요. 공 작가의 장편 중에서도 가장 서정성이 강한 소설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서사성이 여전히 강하거든요.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있고. 공 작가가 인기 작가가 된 이유는 나는 강한 서사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공: 그건 맞는 거 같아요.

하: 그게 핵심인데. 『먼바다』는 어떻게 보면 연애소설이라기 보다는 연애소설의 후일담이죠? 과거 공 작가가 운동권 후일담 소설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어떤 소설적 경향을 리더했다면, 이 소설은 연애 후일담 소설이라 명명해도 좋은 거 같은데... 본격적인 연애라기보다 연애를 추적해 나가는.

공: 그렇죠. 그러면서 삶에 어떤 연애의 비의, 나아가 삶의 비의를 찾아나가는 건데요. 시간이라는 문제하고요.

하: 아, 시간이라는 문제? 그렇군요. 40년 후에 만나게 되니까. 처음부터 그걸 계산을 했는가?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됐는가? 나는 그게 좀 궁금하더라고요.

공: 아, 전혀 계산하지 않았죠. 전혀 계산하지 않았는데요. 이게 머릿속으로 소설을 쓰기 전에 항상 영화를 먼저 한 편 찍어요. 저의 작법 패턴인데. 먼저 영화를 찍을 때 의외로 재밌더라고요. 이게 아, 이 여자를 이렇게 설정을 하고, 저 남자를 저렇게 설정하면 재밌겠다, 물론 거기에 나의 경험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죠. 근데 원래 소설이 경험보다 더 재밌는 거니까요.

첫사랑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그 속에는 인생이 녹아들어가겠다, 세월이 흘렀으니까요. 거꾸로 다음에 기획하고 있는 소설은 아주 노년의 사랑이거든요. 남녀 간의 사랑. 결국 그것도 또 인생에 대한 이야기란 말이예요. 삶과 죽음, 시간에 대한 이야기. 첫 사랑도 그렇고, 노년의 사랑도 그렇고 둘 다 삶과 인생, 죽음, 시간에 대한 얘기니까요. 의외로 열 몇 살의 이야기를 얘기하는데 우리가 삶과 죽음, 혹은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래서 『먼바다』를 쓸 때 너무 재밌었었어요.

항상 저는 이야기가 먼저에요. 서사가 먼저거든요.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나면 의미는 저절로 많이들 파생되어 나오는 거 같아요.

하: 그래서 서사성이 강하군요.

공: 그런 거 같아요. 저는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그래서 이렇게 됐대” 이런 이야기 너무 너무 좋아해요. 어렸을 때부터요. 그리고 그것이 저는 인류의 본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야기 본능요.

하: 그러니까 이야기 본능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작가다?

공: 저는 그래서 포스트모던이나 그냥 모더니즘 되게 싫어해요. 안 맞아요. 아, 그러니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안 맞아요. 저는 이야기가 너무 좋아요. “그래서 어떻게 됐대?” 이런 말이 너무 좋아요.

하: 그렇군요. 공 작가의 소설에는 추리적인 기법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소설 『먼바다』도 그렇고.

공: 그렇죠. 거의 늘. 제가 원래 추리소설로 어렸을 때 독서를 시작한 사람이라 그런가 봐요. 저는 제가 책 마니아로서 제일 싫은 사람이 책장 안 넘어가게 쓰는 사람이예요. 한 페이지에 담긴 문장이나 내용이 너무 좋아 책장이 안 넘어가는 사람이 물론 있지만요. 그건 너무 드물고요. 근데 책장 안 넘어가게 쓰는 사람 진짜 너무 싫어해요.

40년 만에 열리는 첫사랑의 비밀 파일

하: 소설을 다시 이야기해 보죠. 주인공이 사랑한 남자는 모델이 있었어요?

공: 아, 제가 옛날에 신학생을 짝사랑한 건 여러 번 얘기한 적이 있었죠. 그리고 이 여행도 실제로 했었구요. 마이애미와 뉴욕을 작년 3월에 여행 했었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소설을 구상 했어요.

하: 아니, 거기서 그 짝사랑을 만난 거예요?

공: 하하, 그건 상상에 맡기구요. 그런데 어쨌든 약간의 실제와 약간의 허구가 버무려져서요.

하: 그러니까 독자들이 제일 궁금한 거는 뭐냐 하면 정말 원시적인데 “이거 진짜예요?” 인걸요.

공: 제가 뒤에다가 허구라고 써놨잖아요.

하: 그게 재밌는데. 하여간 그건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기로 합시다. 제가 읽으면서 느낀 건 이 소설을 끌고 가는 힘이 뭐냐면 ‘그 남자가 도대체 무엇일까? 정체가 무엇일까?’라는 거 하고.

공: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는 거겠죠.

하: 독자들은 오히려 그 남자와 다시, 어떻게 더 진행될 걸로 추측하거든요. 뉴욕에서. 마침 첫사랑의 남자는 별거 중이다, 그리고 뉴욕에서 다시 만났구요. 옛날 서로가 오해해서 헤어졌다. 그러니 다시 로맨스로? 이렇게 추측하기 쉽죠.

공: 뭐 그거는 맘대로 생각해도 됩니다. 그래야 여운이 남는 거지요.

하: 그래도 좀 아쉬운 겁니다. 이 남자와 그래도 뜨거운 밤을 한 번 불태웠으면. 좀 속물들의 생각이지만.

공: 뭐. 알아서들 하겠지요. 그건 그렇고 제 소설에서 특히 장편에서 단 하루만의 이야기가 처음인 거 같아요. 단 하루의 이야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확하게는 새벽에서 새벽까지 이야기죠.

하: 근데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뉴욕 사는 선배가 너무 안타까운 겁니다. 어떻게 보면 40년을 추억 속에서 산거잖아요. 그래도 하루는 찬란했으니.

공: 그러니까 저는 컴퓨터가 인간을 닮았겠다고 생각하죠. 컴퓨터에는 여러 파일이 저장되어 있죠. 인간에게도 여러 파일이 있고, 그 중에 강렬한 파일이 하나 있는 거지. 아니, 뭐 이 사람이 뭐 예를 들면 지고지순하게 살았다. 이런 얘기는 아무 의미는 없는 겁니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러니까 첫사랑의 파일이 열리는 순간 그 파일은 엄청나게 강력한 거죠. 의외로. 왜냐하면 처음이라는 그 타이틀을 달고 있기 때문에 그런거죠. 그 첫눈처럼. 뭐 폭설도 있었겠지요. 그 사람의. 그런데 그 첫눈의 그 느낌은 완전히 다른 거잖아요. 그런 거처럼.

하: 그러니까 40년 만에 파일이 열렸다?

공: 첫눈처럼. 첫눈 오면 왜 사람이 다 좋아하냐고요. 그게 뭐라고. 또 올 눈이고. 매년 오는 눈인데요. 첫눈도 1년 만에 그렇게 좋아하는데요. 눈도 예쁘지만 사랑도 예쁘잖아요. 아마 그래서 그런 거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아무튼 나도 써놓고 나니까 되게 행복하고 그러네요.

"모성 신화는 남성들의 허구다"

하: 궁금한 게 또 하나 더 있어요. 그게 뭐냐면 엄마하고 딸의 긴장감입니다. 엄마하고 딸의 긴장감이 첨부터 나오거든요. 마지막에 가면 엄마하고 화해를 하잖아요. 실제 엄마하고 갈등은 좀 있어요? 실제 상황에서?

공: 어렸을 때 그랬죠..

하: 어렸을 때? 어렸을 때라는 게 언제쯤인가요?

공: 한 서른 넘어서 엄마를 되게 이해했던 것 같아요.

원래 아빠 사랑을 받는 딸이 엄마랑 사이가 좋을 수가 없어요. 저는 아빠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죠. 소위 ‘아빠 딸’이지요.

근데 또 하나는 일부러 그렇게 썼던 겁니다. 저는 그놈의 모성 신화가 너무나 싫은 거예요. 엄마를 생각하면 막 그립고, 엄마는 다 희생하고, 저는 이런 게 너무 싫은 게 그게 사실은 다 남성 신화예요. 엄마들은 아들한테는 엄청 좋은 사람인데요. 이 세상 딸들한테 인터뷰 해봐요. 제가 보기엔 한 40% 정도는 엄마를 싫어할 거예요. 그 40%도 딸한테 잘해줘서가 아니라, 아마 엄마가 고생하는 걸 보고 딸들이 지레 동정해서 그럴 거예요. 엄마하고 딸은 원래 그렇게 좋은 사이가 아니예요. 그거는 마치 그 신화는 마치 뭐랑 똑 같냐면 아들들이 “우리 아버지 훌륭하다” 그런 거와 같죠. 그런 일 아주 드물죠. 그러니까 동성끼리는 그게 극복해야 되는 대상이잖아요.

저는 우리 문학의 평론가와 작가들이 모성을 너무 미화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여성이 모성에 빠진 문학은 싫었어요, 저거 완전 남성 투항적 문학의 극치라는 생각을 한 거죠. 이거는 그냥 제 생각입니다. 그게 남성 투항적 문학이다, 그게 뭐야 도대체, 이렇게 생각한 거죠. 암튼 그런 것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일부러 또 엄마를 그렇게 만든 거지요.

하: 그러면 바람직한 엄마 상이라는 건 어떤 거예요?

공: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바람직한 엄마 상이죠. 자기 삶 행복하게요.

하: 희생이니 이런 거 상관없이요?

공: 아니, 자기 삶에 애들 냅 두고, 애들 내 팽겨치고 엄마가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거 다 들어가나 그러나 자기 자신을 굉장히 존중하는 엄마죠. 자존감도 있어야 하구요. 전 그런 게 좋은 엄마라고 생각해요.

하: 소설을 보면 주인공 미호는 독일에 유학 가서 남자를 만나고 그 다음에 일을 저질러서 결혼하는 설정으로 돼 있잖아요. 그리고 이 남자와 이혼을 하고.

공: 그리고는 끝이죠.

하: 그 다음부터는 소설에 전혀 안 등장하죠.

공: 근데 저는 이 소설을 써놓고 내가 느꼈는데요. ‘평론가가 이걸 지적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봤는데요. 이 소설에는 이혼한 남자는 그냥 장치일 뿐이고, 미호의 가족에는 남자가 전혀 없어요. 엄마, 나(미호), 여동생, 딸 이렇게 설정되어 있지요. 또 임신한 딸아이의 남자도 없어요. 완전히 여성 천국이에요.

하: 그 첫사랑의 남자만 빼고요.

공: 그 남자도 미호의 삶에 크게 개입하지도 않죠. 그 남자로 인해서 남자의 여동생이 나오잖아요. 그 여동생도 엄마랑 살죠. 남자가 또 하나가 있긴 한데 뱃속에 있어요. 손주가요. 써놓고 보니까 그렇게 된 거예요.

하: 써 놓고 보니까.

공: 그래요. 완전 여성 왕국인 거죠. 완전. 남자들은 희미한 그림자로만 존재해요.

하: 맞아요. 그러네요. 남자들은 희미한 그림자로군요.

공: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남편도 그렇지, 첫사랑의 선배도 옛날이지, 그 다음에 이 남자조차도 추억을 자극하지만 엄마랑 화해하는 데에 어떤 매개체로만, 어떻게 나쁘게 말하면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남자는 인생을 이해하는 데 극단적인 매개체지, 이 남자도 실제적으로 주인공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가 않아요. 하룻밤 잠 못 자게 할 정도의 역할? 써 놓고 보니까 그렇더라구요.

한 편의 시 같은 서정 소설 '먼바다'

하: 이 소설을 쓰고 행복하다고 하셨죠. 사랑 이야기를 써서 그런가요?

공: 그냥 저는 이 책이 되게 행복해요. 이 책을 써서. 아주 그 막내딸을 아주 예쁜 딸을 하나 낳은 거 같아요. 늦둥이를. 되게 예쁜 딸을. 낳고 보니 엄청 예뻐요. 귀여워 죽어요. 막 이런 느낌이 들죠.

근데 사람들이 독후감 중에 그런 게 되게 많아요. 선생님 그거 마지막에 그거 뭐 하러 쓰셨어요? 실제라고 생각하고 흐뭇해하고 있었는데요. 왜 허구라고 쓰셨어요? 뭐 그런 얘기 되게 많더라고요.

(이 소설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공지영은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슬프지만 이 소설은 당연히 허구이다.”라고 끝을 맺었다.)

하: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슬프지만”, 이 말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요.

공: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해석하더라니까요. 진짜로.

하: 문학은 문학으로 봐야지요. 이제 이 소설의 서정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죠. 이 소설은 서사도 그렇지만 서정이 잘 어울려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당히 시적이고.

공: 이 책에서 제가 주력했던 게 뭐냐 하면,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드라마도 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 널린 얘긴데요. 그래서 독자들에게 문자의 향기 같은 걸 선사하고 싶었어요. 선물로. 그래서 저는 시도 많이 인용했고요. 우리가 언제 천천히 시를 읽어보겠어요. 나희덕, 문태준 같은 우리나라 시인, 휠덜린 같은 독일 시인의 시편들...

문자의 향기가 있잖아요. 절대 영상이 따라할 수 없는 그 향기가. 그런 것들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이 정말 영상에 밀리는 이 시대에 활자가 진짜 완전히 전폐를 하는 이 시대에, 활자만이 주는 그러니까 기름보일러 시대의 그 나무 타는 냄새 그런 걸 좀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쓰면서도 저도 새롭게 그걸 좀 찾았고, 저도 되게 행복했던 거 같아요.

하: 서정적인 걸 쓰면 행복해지죠?

공: 행복해져요. 무척 행복해져요. 이쁜 음악을 듣는 것 처럼요.

하: 그래서 서사적 골격을 갖추면서도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아름다운 소설이 되었군요.

이야기를 들려주는 섬진강가의 홍매화

공: 아, 감사해요. 저도 속으로 써놓고 나서 나중에 보니까 “내가 그래도 아직 시퍼렇게 감각이 아직 있구나” 이렇게 생각한 거죠. 그런데 이 감각은 다 고통 탓인 거죠. 제가 너무 시달려가지고 제가 절대로 안주하지 못하게요. 원래 사람이 예민해지는 거는 다 고통 탓이에요. 아파야 예민해지고요. 힘 들어야지 민감해지고 이러니까요.

하: 그 고통이라는 게 어떤 사회적 고통? 개인적 고통?

공: 사회적 고통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계속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 그런 거. 그런 게 고통스럽죠. 그러니까 저의 진심이 계속 왜곡되고 이러는 게 너무 고통스럽죠.

하: 근데 굉장히 용감하게 나아가고 있었잖아요.

공: 아니, 용감한 것은 좀 다음 문제고요. 저는 그냥 자유롭게 자유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제가 죽는 날까지 시골로 옮기려는 이유도, 어쨌든 이제 제가 더 이상 글 써서 못 팔아도 그냥 자유롭게 살다가 죽고 싶어요. 그러려면 이제 서울에 있는 것들을 팔아서 생활도 작게 만들고, 시골에서 검소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무척 많이 했어요.

하: 근데 이 소설로 보면 아직 쓸 게 많을 것 같은데요.

공: 많아요. 사실은 이 소설 쓰기 전에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았어요. 이 세상에서 저를 너무 조명하는 것도 피곤하고, 그것도 좋지 않게요. 이제 하동에 간 김에 은퇴 선언하고, 그냥 피자집을 하나 하든, 커피집을 하나 하든. 그렇게 살고 싶은 거예요. 너무 지겨웠어요.

그런데 이제 조금 생각이 바뀌면서 이 소설을 쓰면서 생각해보니까 내 안에 소설이 진짜 천 권이 들어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게으르지만 않고 좀 더 부지런히 쓴다면, 그러니까 판매하고 상관없이 저는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제 안에 이야기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아까 얘기한 서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너무 써보고 싶은 얘기가. 정말 항상 얘기하지만 우주 얘기도 정말 한 번 시간과, 시간과 어떤 공간을 다시 초월하는 우주 얘기도 써보고 싶고요.

하: 은퇴하면 한국문학의 손실이죠. 한 20년은 더 써야죠.

공: 20년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쓰면서 다시 창작력을 회복했어요. 그래서 아, 그래, 오히려 거꾸로 제가 세상 때문에 은퇴를 한다면 제가 세상을 너무 의식하는 거지, 오히려. 그러니까 그냥 쓰고 싶은 걸 쓰자.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하: 그게 연애소설의 힘이었는지도 모르죠.

공: 그렇죠. 연애소설의 힘일 수도 있어요. 뭔가 잉태가 계속 되니까요. 그래서 아, 그러자. 그리고 지금 즐겁게 다음 소설. 그러니까 다음 또 에세이 준비하고, 그 다음에 또 소설 준비하고. 원래 무슨 책을 구상할 때 항상 제목을 먼저 생각해놓는 버릇이 있거든요. 쓰려고 하는 건 뭐냐 하면, 아까도 말한 건데요. 그거는 진짜 늙은 70 넘은 두 남녀의 이야기인데요. 제목는 <은비 단비>. 은비, 단비가 개 이름입니다. 각자 기르는. 재밌겠죠?

하: 당연 재밌을 겁니다. 여하간 공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문학의 본질을 회복한 거네요. 그게 제일 큰 소득 같아요.

공: 그렇죠.

하: 서정과 서사, 그리고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네요. 공 작가의 창작노트랄까, 이런 것도 엿보았구요. 『먼바다』에 대해 더 이야기는 나누지 말구요. 독자들이 읽을 공간을 내두려 두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특별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 오랜만에 일 해갖고 하 선생님이랑 또 즐거운 얘기 하니까 너무 좋아요. 고맙습니다.

(소설 『먼바다』를 이야기 하는 내내 작가 공지영은 이른 봄 섬진강가에 피어난 홍매화 같았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홍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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