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에 바람맞고 열불났지만 그래도 내일은 또 바다로....

사진은 2020년 1월 추자도 부근에서 올라온 열기. 이런 조과를 기대했건만 아직 시즌이 빨랐다.
사진은 2020년 1월 추자도 부근에서 올라온 열기. 이런 조과를 기대했건만 아직 시즌이 빨랐다.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열기의 공식 명칭은 불볼락이다.

볼락, 우럭(조피볼락), 열기(불볼락) 등은 낚시꾼에게 익숙한 생선이며 손맛과 함께 입맛을 보장하는 고마운 생선이다.

열기는 주로 서해 충남 남부 이남, 남해 전역, 동해 전역에서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잡는다. 동해 남부 지역으로 가면 마릿수는 보장받지만 씨알이 작다는 흠이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씨알이 좋은 지역이 남해 원도권이다.

주로 여수, 고흥, 완도, 제주 등에서 출조하여 여서도나 사수도나 추자도 부근에서 낚시를 한다.

꾼들 사이에서는 30cm에 이르는 큰 싸이즈의 열기를 왕열기, 대왕열기라고 부른다. 바늘 10개에 대왕 열기가 줄줄이 달려 올라오는 것을 경험해본 낚시꾼들은 시즌이 돌아오면 열기 낚시를 가서 쿨러를 왕창 채워 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열기는 회나 구이가 일품이어서 한 번 맛을 본 사람들이 가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열기 좀 잡아, 낚시 좀 한다고 자랑하기 위해 혹은 스스로의 우쭐함 때문에라도 열기를 잡으러 그 먼 길을 떠난다.

수도권에서 왕열기를 잡으러 가자면 통영, 여수, 장흥, 고흥, 완도, 진도 등으로 일단 가서 배를 타야 한다. 이게 만만찮은 거리라 차를 운전하여 항구에 가서 배를 타고 낚시를 하고 당일로 돌아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수도권에서 남해 먼바다 왕열기를 노리는 낚시는 낚시회의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버스만 이용해도 되지만, 배까지 알선하는 낚시회가 많아 아예 패키지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 패키지는 아예 낚시 관광상품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여서도 부근 남해 해상. 파도가 상당히 높다.
여서도 부근 남해 해상. 파도가 상당히 높다.

완도행의 경우 보통 밤 10시경에 부천 중동에서 출발하여 수도권 시흥 안산 등을 경유하여 새벽 3시경에 완도 도착, 아침 식사를 하고 승선, 종일 낚시를 하고 4시경에 귀항, 5시경 저녁 식사를 하고 귀경하는 코스다. 보통 출발지 중동에 도착하면 밤 11시경이다.

24-5 시간 움직이는 강행군이지만, 우등 버스에서 자고, 배에서 이동 중에 잠을 자는 경우가 많아 직접 운전해서 항구로 출조하는 경우보다 훨씬 피로도가 덜하다.

요금은 버스비, 선비, 식사비를 포함해 대개 18만 원에서 20만 원 선이다.

12월 11일 밤 9시 중동에 도착하여 버스를 탄다. 낚시는 12일(4물) 낮에 하는 거다. 낚시회 버스는 의자 간격이 넓어 오며가며 잠을 자기 편하다.

버스는 두어 군데를 경유하여 꾼들을 싣고 밤새 달려 새벽 3시 30분경 완도항에 도착한다. 다른 때 같으면 식당에서 아침 밥을 먹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식당 심야영업이 제한되어 있어 각자에게 도시락을 지급한다.

4시경 배에 오르기 전에 버스에서 자리 배정을 하는 추첨을 한다. 배에는 얼음이 준비되어 있어 각자의 쿨러에 얼음을 적당히 채우고 선실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잠을 자는 꾼도 있지만, 물고기와의 만남이 마냥 설레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꾼도 있다.

7시경 사위가 밝아오며, 선장이 낚시 준비를 하라고 방송을 한다. 선실을 나오니 한 바다다. 청산도를 지나 여서도 서쪽에 배가 떠 있다.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의 하얀 이빨이 보인다.

열기 낚시의 미끼는 오징어, 크릴새우, 미꾸라지 등이다.

미꾸라지는 열기 낚시 도중 우럭이나 붉은 쏨뱅이를 노릴 때 사용하는데, 나의 경험으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열기에는 새우가 특효인 경우가 많았다. 낚시점에서 열기 낚시용 크릴새우를 선별해서 따로 판다.

우럭 낚시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오징어에 염색을 한 붉은 오징어가 유행이다. 열기용으로 나오는 붉은 오징어를 사용하는 꾼들이 상당히 많다. 낚시꾼의 열정이, 고기를 향한 일편단심이 붉은 오징어로 표현되는 것 같다.

거치시켜 놓은 열기대. 자세히 보면 붉은 염색을 한 오징어 미끼가 보인다.
거치시켜 놓은 열기대. 자세히 보면 붉은 염색을 한 오징어 미끼가 보인다.

대여섯 번 채비를 내리고 올렸을까?

낚싯대에 열기 특유의 휘청, 다음 탈탈 거리는 입질이 온다.

이때부터 열기 여러마리가 줄을 타야 한다. 하지만 낱마리인 듯하다. 올리니 역시 아랫 바늘에 한 마리. 대신 씨알은 크다. 왕열기다.

열기낚시는 의외로 방법이 쉽다. 3미터 정도의 인터라인대를 거치시켜 놓고 10여 개의 바늘이 달린 카드 채비에 미끼를 달고 선장의 신호에 따라 바닥까지 채비를 내린다.

바닥을 확인하고 3바퀴 정도 릴을 감아 놓은 뒤(1m 정도 바닥에서 채비를 띄운 뒤) 기다리면 된다. 이때 조심할 건 초릿대를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초릿대가 쿵하고 바닥을 치면 재빨리 한두 바퀴를 감아 바닥에서 채비를 띄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채비가 바닥에 걸리거나, 옆 사람과 채비가 엉키게 되어 있다.

한두 번 그렇게 하면 옆 사람이 바로 항의를 하게 되어 있으니,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반드시 초릿대에 집중해야 한다.

곡선을 그리던 초릿대가 쭉 펴지면 다른 사람과 채비가 엉켰다는 신호다. 이때도 서로 속도를 맞추어 감아 올려야 엉킨 채비를 풀 수가 있다. 대부분은 줄을 푸는 것보다 자르는 것이 빠르다.

이때 자신의 채비를 잘라야지 상대의 채비를 자르면 곧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열기나 갈치 낚시는 바로 옆 꾼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툼으로 번질 수도 있다. 나이 든 사람이 참을 것 같지만 의외로 나이가 많을수록 에티켓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 다음부터 소식이 없다. 갑갑하다. 10시가 넘는다.

3시간 동안 낚시해서 한 마리다. 다른 꾼들도 거의 마찬가지다. 한두 마리다. 이럴 땐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게 좋다.

3미터 인터라인대를 포기하고 우럭대로 바꾼다. 채비도 반은 잘라 5개 바늘 채비로 바꾼다. 낚싯대를 듣고 조그만 입질, 바닥고기도 잡겠다는 전략이다.

이렇게 해서 점심 전까지 5마리를 더 잡는다. 작은 붉은 쏨뱅이는 방생한다. 11시 30분 경에 이른 점심을 먹고 낚시를 한다.

물이 바뀌어서 썰물이다. 물이 바뀌면 열기가 줄을 탈 수도 있다. 그걸 기대했지만 아예 입질이 없다.

결국 1시가 넘어서 선장은 이 포인트를 포기하고 내만쪽으로 들어간다. 보길도가 보이는 포인트다. 하지만 물이 탁해서 아예 입질이 없다. 2시가 넘자 선장은 다음을 기약하자며 철수 길에 오른다. 완도항에 입항하니 동백꽃이 처량한 낚시꾼을 반긴다.

두세 마리의 열기도 소중하다. 피를 빼는 장면.
두세 마리의 열기도 소중하다. 피를 빼는 장면.

머나먼 길을 왔지만 달랑 열기 6마리다. 6마리를 담으니 40리터 쿨러가 횡하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24리터 쿨러를 가져갈까 하다가 많이 잡으면 쿨러가 모자라니 좀 무겁더라도 큰 걸! 하면서 호기를 부렸던 내가 우습다.

저녁을 먹고 출발해 중동에 도착하니 정확히 밤 11시다. 왜 이번 열기 낚시는 거의 꽝이었을까?

그 원인을 분석해 본다. 첫째 날씨다. 바람이 많이 불어 물이 뒤집어졌다.

둘째 아직 시즌이 조금 이르다. 12월 25일 경부터 제대로 남해 먼바다 열기 낚시가 될 것 같다.

셋째 포인트 선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한 바다 포인트보다는 섬 주변 직벽 포인트도 노릴만 했는데, 선장의 고집도 한몫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일부러 안잡는 선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장의 판단에 따라 조과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완도항의 동백꽃.
완도항의 동백꽃.

낚시란 게 그렇다.

많이 잡는 날도 있고 못잡는 날도 있다.

못 잡아서 또 출조 계획을 세우는 게 낚시이기도 하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면서 바다에 이르는 병이 바로 낚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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