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부친 여읜 이 부회장 국정농단 최종선고 앞둬
‘오너 리스크’ 위기에서 역대 삼성오너들 구속 면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호일 기자】 새해 벽두부터 삼성이 위기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둘러싼 오너 리스크다.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 부회장이 오는 18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의 최종 선고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재판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병석에 누워 있는 부친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대표하던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2017년 2월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영어의 몸이 됐다.

이듬해 2월 2심에서 집행유예로 1년만에 가까스로 풀려났고 2019년 8월 대법원 상고심에서 파기환송됐다.

이러한 재판 과정에서 큰 변수가 생겼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해 10월25일 타계한 것. 이에 따라 부친의 재산을 상속받은 이 부회장이 삼성의 실질적 오너가 됐다.

지난달 30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특검 측은 징역 9년을 구형했고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을 통해 타계한 부친을 언급했다. 그는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너무나도 존경하는 아버님께 효도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리곤 “외부의 부당한 압력을 거부할 수 있는 철저한 준법시스템을 만들겠다”며 과거와의 단절을 약속했다.

이제 최종 재판은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 결과에 따라 ‘삼성 총수’의 구속 여부가 판가름난다. 만약 이 부회장이 또다시 영어의 몸이 된다면 그룹으로선 '오너리스크'가 현실화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 창업주 이병철,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구속 위기

돌이켜보면 삼성은 위기에서 강했다. 1938년 3월 이병철 회장이 대구에 세운 삼성상회에서 출발한 삼성그룹은 그동안 숱한 격변을 거쳤다. 특히 위기 때마다 ‘삼성 총수’는 배수진을 치며 구속을 피했다.

먼저 창업자 이병철 회장. 그는 이른바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곤역을 치렀다. ‘삼성 60년사’ ‘이건희 스토리’ ‘호암자전’ 등에 따르면 1965년 비료공장에 관심이 많던 박정희 대통령은 이 회장을 불러 울산에서 공장건설을 주문했다.

당시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져 삼성은 일본 재벌 미쓰이로부터 4200만 달러의 차관을 받기로 했는데 미쓰이는 여기에 더해 삼성에게 100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제공키로 했다.

이 회장은 이를 박 대통령에게 알렸다. 그는 돈을 받는 대신 일본에서 물건을 몰래 들여와 처분해 비료공장 건설, 한국비료 운영, 정치자금 등으로 나눠 쓰기로 했다.

정권 수뇌부의 보호하에 비밀리 추진되던 이런 계획이 사카린 원료인 OTSA가 세관에 적발되면서 엉뚱하게 번졌다. 신문마다 ‘재벌 밀수’로 대서특필됐고 끝내 국회로까지 비화됐다.

당시 무소속 김두한 의원이 단상위로 올라 연설 도중 “이것은 국민이 주는 사카린이니 골고루 나눠먹어라”며 인분을 각료석에 퍼부었다.

희대의 사건인 ‘국회오물투척사건’ 이후 이병철 회장 둘째 아들 창희씨가 구속됐지만 이듬해인 1967년 6개월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코너에 몰렸던 이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비료 국가헌납과 경영은퇴라는 극약처방으로 구속위기를 모면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일 경기도 평택사업장을 방문해 파운드리 생산설비 반입식에 참석해 현판제막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일 경기도 평택사업장을 방문해 파운드리 생산설비 반입식에 참석해 현판제막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건희, 비자금 사건에 경영은퇴로 승부수

이병철 회장의 삼남 이건희 회장도 평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특히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삼성이 몰래 조성한 비자금을 폭로하자 그룹이 최대 위기로 내몰렸다.

외부인이 아닌 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과 폭로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삼성이 간부명의의 차명계좌로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 돈으로 대선자금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뿐 아니다. 전현직 검찰 간부에게 ‘떡값’을 제공했다며 리스트를 공개했고 나아가 리움미술관 홍라희 관장이 이 비자금으로 값비싼 미술품을 구입했다며 이 회장 부인까지 끌어들였다.

결국 이듬해인 2008년 1월 삼성 특검이 출범했다. 이 회장 자택과 삼성본관, 핵심 임직원 7명의 집과 별장, 리움미술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이어 이 회장 부부가 연이어 특검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삼성 특검팀은 4월17일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1만4713개의 계좌추적을 통해 4조5천억원의 차명재산을 밝혀내면서 이 회장 등을 기소했다.

수사결과 발표가 있은 지 닷새 뒤인 4월 22일 이 회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저는 오늘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선친인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 사건때 했던 것처럼 이 회장도 ‘경영은퇴’라는 배수진을 치며 승부수를 띄웠다.

그리고 차분히 재판을 지켜봤다. 1년 이상 걸친 재판에서 이 회장은 특검이 제기한 조세포탈을 제외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면죄부를 받았다. 또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배정 사건 모두 집행유예와 벌금으로 구속을 면했다.

이 회장은 재판이 마무리되고 이명박 대통령의 사면까지 발표되자 2010년 1월 다시 경영일선에 나서면서 ‘제왕의 복귀’를 알렸다.

이렇게 볼 때 창업자 이병철 회장과 2대 이건희 회장 등 삼성의 오너들은 모두 위기에 내몰렸지만 최악의 시나리오인 인신 구속을 피하면서 소위 '오너불패'의 기록을 이어갔다.

■ 최종선고 앞두고 이재용 선처호소 국민청원 등장

이 부회장은 2021년 새해를 맞아 외견상 다가오는 재판보다는 경영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해 첫 근무일인 4일 평택 2공장의 파운드리 생산설비 반입식에 참석한 후, 반도체부문 사장단과 중장기 전략을 점검하는 것으로 2021년 경영 행보를 시작했다.

또한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선처를 호소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해 최종 선고를 앞두고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유리한 국면으로 작용한다.

지난 1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자유의 몸을 만들어 주세요’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인은 “이 부회장은 지난 몇 년간 수사와 재판 그리고 이미 옥고까지 치렀다”며 “어려운 난국에 지난 몇 년 동안 수사, 재판, 감옥 등등으로 너무나 많이 정신적·육체적으로 시달렸고 또한 충분히 반성하고 사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 이건희 회장과 이 부회장이 삼성을 전자부문 대한민국의 No.1을 넘어 세계의 No.1 기업으로 성장시켜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도 했다.

자신을 국민이자 교육자라고 소개한 그는 “이제는 이 부회장을 그만 놔주고 자유의 몸을 만들어줘서 경영 일선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대통령께서 선처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이 청원글은 5일 오후 현재 4만5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아무튼 지난해 부친 이건희 회장의 타계로 그룹의 실질적 오너로 첫해를 맞는 이 부회장과 삼성이 '오너리스크' 위기와 난국에서 어떻게 벗어날 지 새해 벽두부터 재계의 관심과 이목이 모아진다.

이재용 부회장이 4일 경기도 평택 3공장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부회장이 4일 경기도 평택 3공장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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