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권 KDI연구위원

【뉴스퀘스트=신동권 KDI연구위원 】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시장경제라는 경제질서 틀 속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같은 사회주의 국가도 경제활동만은 시장경제가 도입되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는 제3의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 시장경제에서 경쟁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굳이 더 이상 강조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국가경제를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경쟁정책 외에도 다양한 규제와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성장정책, 분배정책, 산업정책, 소득정책, 환경정책, 경제주체간 조화를 위한 경제민주화 정책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들 정책들은 헌법 제119조 제2항에 근거를 두고 집행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정책간에 충돌되는 부분이 없고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떨어진다면 국가경제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효율적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상호간에 충돌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어디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는 ‘선택의 문제’라기 보다는 ‘조화(調和)의 기술’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경쟁의 기능에 자유, 공정, 그 외에도 후생이라는 기능이 있음을 앞선 칼럼에서도 지적하였다. 공정거래법은 예외적으로 적용이 제외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후생에 더 큰 도움이 될 경우를 상정하여 경제 전체적인 관점을 고려하여 규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공정거래법은 ‘다른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법 적용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다른 법령에서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공동행위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면 원칙적으로 공정거래법이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보험업법 등 그런 규정을 둔 몇 개의 법이 존재하고 있다.

그 중 최근 이 문제로 시끌한 분야가 있다. 바로 해운사 공동행위 사건이다. 언론 보도내용을 종합해 보면, 공정위가 국내외 23개 해운사와 동남아정기선협의회의 운임 공동행위에 관한 심사보고서를 위원회에 상정하자 해운업계와 해양수산부는 해운법을 근거로 허용되는 행위라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정치권에서는 해운법을 개정하여 공정거래법 적용 면제를 소급하여 적용하려는 비 상식적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해운법 제29조에 운임 등 협약이 허용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해운사들의 운임 협약은 공정거래법 적용의 예외가 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해운동맹이라는 개념에 기원을 두고 있는 매우 특수한 규정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협약 참가 및 탈퇴의 자유를 보장하고, 해수부장관에게 협약 내용을 신고하게 하거나 거래상대방인 화주단체와의 정보교환 및 협의의무를 부과하는 등 제도의 남용을 방지하는 장치도 동시에 두고 있다.

그럼 이러한 규정을 모를리 없는 공정위가 왜 칼을 빼 들었을까? 아마 공정위는 해운사들이 위와 같은 신고 등 절차규정을 위반했으므로 정당한 행위가 아니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반면 해운사들은 해수부에 정상적인 신고를 하였고 따라서 절차위반이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해수부도 정상적으로 신고를 받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한편 해운법을 보니, 특이하게도 신고받은 내용에 협약 참가 및 탈퇴를 제한하는 등 경우 조치 권한과 실질적인 경쟁제한이 있는 경우 조치 권한 및 공정위 통보의무가 해수부장관에게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신고받지 않은 협약이 있었을 경우 조치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적용제외 제도는 타 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절차를 존중하여 공정거래법의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제도설계의 기본 취지이다. 상기 건에서도 타 법에 따라 신고행위들이 있었다면 그 신고가 부실한지, 내용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주무부처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해운사 조사 착수전에 해수부로부터 자료협조를 받아 그 간의 운임신고 현황에 대한 예비적인 검토를 거쳐 부처간 협의를 통해 방향설정을 하는 정책적 노력이 있었더라면 경쟁정책과 산업정책의 조화에 관한 모델 케이스가 되었을 거란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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