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科技누설(7)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바이러스는 라틴어로 독(poison)이란 뜻이다. 바이러스의 존재는 최근의 일로 19세기 후반 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병을 일으키는 작은 미생물은 세균, 다시 말해서 박테리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균보다 작은 어떤 액체나 혹은 입자가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세균보다 작은 것은 독(毒)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이 전염성 병원체에 독을 의미하는 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이러스는 원래 ‘毒’을 의미하는 용어

최초로 바이러스의 존재를 제안한 사람은 러시아의 미생물학자 드미트리 이바노브스키(Dmitry Ivanovsky, 1864~1920)였다. 담배모자이크 질병을 연구하던 중 세균, 진균, 그리고 기생충을 모두 제거하고 건강한 담뱃잎에 접종했는데 똑같은 질병이 나타나자 담배모자이크 병이 극미생물에 의해 발생한다고 학계에 보고했다.

이후 네덜란드의 식물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마르티누스 베이에링크(Martinus Beijerinck)가 1898년 담배모자이크 질병이 미생물보다 더욱 미세한 감염원에 의한 것임을 실험으로 확인하고 ‘바이러스’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바이러스를 세균처럼 생명체로 볼 것인가 무생물체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지속돼 왔다. 바바이러스는 생명체와 무생물체의 특징을 다가지고 있다.

생명체의 특징으로는 증식, 유전적 돌연변이 발생, 진화하는 것이다. 무생물체 특징은 숙주 감염 이후에만 증식하기에 단독으로 증식할 수 없고, 감염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단백질과 핵산의 결정체에 불과하다. 물질대사를 할 수 없고 에너지도 만들 수 없다.

김형근 논설위원 겸 과학전문기자 

고대에서 현대까지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은 여러가지 형태로 진화해 왔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이러스는 2012년을 기준으로 2600여 종이다. 바이러스는 세균, 진균, 그리고 기생충을 비롯해 식물과 동물에 기생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 연구에 따르면 거대 바이러스(giant virus)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에도 발견됐다. 이처럼 바이러스는 모든 종류의 생명체에 감염하여 기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다.

지구의 역사만큼 오래돼, 생명의 기원이라는 주장도 많아

바이러스는 지구의 역사와 같이 했다. 지구 나이를 45억년으로 볼 때 박테리아는 35억년, 바이러스는 45억년 전~35억년 전에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BC 431년부터 BC 404년까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폴리스들이 맞붙은 전쟁을 다룬 ‘실존 사학의 아버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등장하는 아테네 역병은 최초로 기록된 감염병이다. 전문가들은 이병을 장티푸스로 추측하고 있다.

로마제국에 나오는 안토니우스 역병은 천연두나 홍역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14세기에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는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최대 사망자를 냈다.

뿐만이 아니다. 아메리카의 화려한 잉카문명도 역병에 의해 무참히 무너졌다. 15세기 신대륙 정복에 나선 유럽인들에게 묻어간 천연두를 비롯한 새로운 질병들로 인해 전혀 면역성이 없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95%가 사망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1차대전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스페인 독감

1차대전은 따지자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참혹한 싸움으로 결말을 지었다. 이 전쟁이 끝나게 된 이면에는 심각한 바이러스가 자리하고 있다. 연합군, 동맹군 할 것 없이 엄청난 군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감기 바이러스 스페인 독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18년 유럽과 심지어 미국에서 무려 70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생명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진실을 밝혀 내기 위해 당시의 바이러스를 부활시킨 학자는 미국 육군 병리학연구소의 제프리 토벤버거 박사다.

그는 박사는 2008년 미국 알래스카에 묻혀 있던 한 스페인독감 여성 희생자의 폐 조직을 채취한 뒤, 여기서 이 바이러스의 8개 유전자 배열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알게 된 그는 “자연은 언제든지 무서운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자연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세균이 얼마나 위험한 공격자로 변할 수 있는지를 암시하는 내용이다. 자연에서는 항상 변이가 일어나며, 인간의 면역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변종들이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문은 또 생긴다. 그러면 하등생물의 진화는 왜 그렇게 빨리 진행되는 것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바이러스도 생존을 위해 인간에 맞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을 앞세운 페니실린과 항생제와 같은 인간의 ‘잔인한’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뿐만이 아니다. 기후변화와 온난화로 인해 위협을 받기 때문에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물체에 있어서 생존보다 중요한 명제는 없다. 진화로 인해 등장하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은 찰스 다윈의 주장처럼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연현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진리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에게 미증유의 위협을 던지고 있는 바이러스라는 괴물과 싸워야 하는 힘든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 토젠버거 박사의 지적처럼 “이제 인류의 역사는 인간과 바이러스와의 영원한 투쟁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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