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동위원소의 DNA를 찾아서(7)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여름을 시원하게 만드는 채소 가운데 하나는 수박이다. 만약 그 수박에 씨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면 한입에 가득 먹기가 어려울 것이다. 사실 “씨 없는 수박”이 나오기 전만 해도 수박 속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씨들로 가득했다.

오늘날 “씨 없는 수박”은 방사선 기술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오늘날 씨 없는 수박이 바로 방사선 기술에 의해 탄생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씨가 많은 수박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응당 씨가 전혀 없거나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수박은 원래 씨가 별로 없는 채소로 생각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가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우 박사가 유전자 처리 과정을 거쳐 씨 없는 수박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혀 맛이 없어서 외면당했다.

오늘날의 씨 없는 수박은 유전자 처리가 아니라 X선을 방사해 만든 것이다. 씨들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 근대에 들어와 이루어진 커다란 농업혁명은 대충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은 독일이 낳은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934)라는 화학자가 발명한 질소비료다. 당시 질소비료는 농작물 성장에 아주 필요한 성분이었다.

1904년부터 기체 상태의 질소와 수소를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만드는 연구에 착수하여, 1908년 높은 압력을 가해 암모니아를 합성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1909년 화학공업기업인 바스프(BASF)와 계약을 맺고 동료인 칼 보슈(Carl Bosch, 1874~1940)와 함께 이를 실용화할 수 있는 공정 개발에 착수하였다. 결국 결실을 맺어 1913년 하버-보슈법(Haber-Bosch Process)’이라고 불리는 대량생산 공정 개발에 성공하였다.

질소비료생산에 이어 농업혁명의 주역으로

이는 질소비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인류에 커다란 혁명을 열어주었다. 전문가들은 만약 그가 질소비료 대량생산 방법을 연구하지 못했다면 식량생산이 크게 증가하지 못하므로 세계인구는 지금의 절반인 30억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암모니아 합성법에 성공한 공로로 191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가스 개발과 살포를 주도해 ‘독가스의 아버지’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화학에 천재였던 그는 폭탄제조에 필수적인 질산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도 열어 1차 대전 발발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동정론도 거세다.

두 번째는 농약인 살충제의 개발이다. 농약이 환경오염으로 인해 생태계가 많은 파괴를 가져왔고, 심지어 우리의 식단까지 피해를 주기도 했지만 농작물 생산을 증가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농작물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품질을 개량해 새로운 농업혁명을 일으키도록 도와준 주인공이 있다. 바로 방사선이다. 방사선 조사를 통해 새로운 종(species)의 개발이 가능하다. 이러한 방사선의 생물학적 작용능력이 점차 여러 분야에서 이용되면서 새로운 농업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소위 방사선돌연변이 육종(radiation mutation breeding) 기술이다.

예를 들어, 열 또는 폭풍에 더 잘 견디어 낼 수 있는 농작물, 질병과 가뭄에 저항력이 강한 작물, 영양가치가 더 좋은 작물, 그리고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색깔이나 다른 특성을 제공할 수 있는 작물 등이 그것이다.

방사선 조사로 작물의 DNA를 변화시켜 우수한 품종으로

지난 수세기 동안 자연적인 변화, 다시 말해서 식물의 유전적 구조에서 무작위로 일어나는 변화의 결과인 선택적 번식과 자연적인 진화는 오직 강한 종만이 살아남도록 하면서 약한 식물유형을 가려냈다.

그러나 방사선 기술을 우수한 종을 생산하는데 이 과정을 훨씬 가속화시킬 수 있다. 식물의 DNA 구조를 개조하기 위해 직접 방사선 조사한 씨앗, 또는 씨앗에 변화를 유발시키기 위해 농작물에 직접 방사선을 조사하는 방법들이 있다.

유전적인 구조의 새로운 조합을 만들기 위해 주의 깊게 마련된 이온화방사선을 조사한 결과, 보리, 기장, 사탕수수, 밀, 쌀, 옥수수, 마늘, 바나나, 콩, 후추와 같이 우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주요 농작물들이 개량된 품종으로 탄생했다.

면화, 해바라기, 박하 등에서도 새로운 변종이 나타났다. 과일에서도 나타났다. 사과, 체리, 오렌지, 복숭아, 살구, 석류, 배 등에서도 나타났다. 2천250여 종의 새로운 농작물 변종 가운데 75%가 쌀과, 보리, 콩과 같은 농작물과 과일 등이며, 나머지 25%는 국화, 장미, 달리아, 베고니아, 카네이션과 같은 장식용의 꽃이다.

이러한 농작물 변종 가운데 90%가 방사선 기술에 의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식물의 DNA 기본적인 구조변화는 대부분 감마선, X-선, 중성자 충돌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기술은 인위적인 돌연변이 생성이 발견된 1928년 이후 급격히 발전했다.

미국의 화학자 허먼 뮬러는 1928년 처음으로 X선을 초파리에 조사해 인공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사진=wikipedia]
미국의 화학자 허먼 뮬러는 1928년 처음으로 X선을 초파리에 조사해 인공 돌연변이를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사진=wikipedia]

인공 돌연변이 시초는 초파리에 X-선 조사

찰스 다윈이 1859년 진화의 구조를 설명하는 가운데 자연선택 중에서 변이가 최초의 조건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 변이가 돌연변이이다. 천연적으로 일어나는 돌연변이는 열성(劣性)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생물이 진화하는 것은 돌연변이의 누적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미국의 허먼 물러(Herman Muller)가 1928년 초파리에 X선을 조사하여 처음으로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하였다. 이 업적으로 그는 1946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후 영국의 샬롯 아우어배크(Charlotte Auerback)가 1939년 최초로 화학물질인 머스타드 가스(mustard gas, 겨자 가스)를 사용하여 초파리에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하는데 성공했다. 최초의 화학적 돌연변이다.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농작물 종을 개선하는데 방사선을 활용하여 최대의 이득을 취한 나라다. 2002년 현재 중국에서 가꾸는 농작물의 27%가 방사선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뒤를 이어 인도(11.5%), 러시아(9.3%) 네덜란드(7.8%), 미국(5.7%) 순이다.

쌀을 비롯해 과일 등의 품종개량에 이바지

쌀은 세계인구 50% 이상의 주요한 식량원이고 아시아인들의 주식이다. 이제까지 돌연변이를 통해 434 종의 새로운 쌀 품종이 개발되었으며 그 중 절반이 감마선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집트에서 개발된 반 난장이(semi-dwarf)라는 품종을 개발해 헥타르당 거의 9톤을 더 거두어들였다. 세계 평균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방사선에 의한 돌연변이를 통해 이룩한 농업혁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본은 돌연변이를 거친 18종의 쌀 품종으로 9억2천700만 달러의 경제효과를 더 냈다. 태국은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향기 나는 쌀 수출국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방사선을 이용한 작물 가운데 잘 알려진 것은 ‘씨 없는 수박’이다. 우장춘 박사가 유전자처리를 씨 없는 수박을 만든 것은 1953년의 일이다. 유전자 처리를 통해 씨 없는 수박을 만들었다.

그러나 우 박사가 만든 씨 없는 수박은 소비자에게 외면 받았다. 씨가 없어 먹기는 편했지만 맛이 없었다. 당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 후 씨 없는 수박은 거의 생산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52년. 충북 진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씨 없는 수박을 부활시켰다. 우장춘 박사의 연구를 보완한 게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든 수박이다. 맛에 대한 핸디캡을 극복해 당도도 훨씬 더 높아졌다.

진천군이 맛을 살린 비밀은 ‘장파장 X선 꽃가루 불임처리법’이란 새로운 방법에 있다. 간단히 말해 ‘3배체 유전자 처리’를 거친 개량종자를 심어서 씨 없는 수박을 재배하는 게 우장춘 박사의 방식이었다면, 새 방식은 꽃가루에 장파장 X선을 쬐어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씨 없는 수박”은 장파장 X-선을 쬐어 탄생

이 방법은 수박농업에 거대한 혁신을 몰고 왔다. 씨 없는 수박 시대가 부활한 것이다. 장파장 X선이란 이름 그대로 에너지를 줄인 800Gy(그레이)의 X선으로 자외선보다 약간 세다. 이 광선을 수박의 꽃가루에 90분가량 쏘이면 수정은 가능하나 임신은 안 되는 상태로 변한다.

즉 화분관의 발아능력은 살아 있지만 씨는 맺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수박밭에서 수꽃만 떼어와 장파장 X선 조사기(照射機)’에 넣었다 꺼낸 다음 2~3일 안에 암꽃에 뿌려주면 어떤 품종의 수박이든 맛과 육질은 그대로인 채 씨만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돌연변이 품종 수는 30여 종에 이른다. 세계 25위권 수준이다. 개발투자부족으로 경쟁국에 비해 저조한 실정이다. 그러나 1997년 종자 산업법이 제정된 이후 돌연변이 품종 등록수가 늘어가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중심으로 신품종 개발을 위한 산학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아파트문화를 겨냥해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방사선기술을 통해 개발한 신품종 무궁화 “꼬마’도 그 중 하나다. 보통 무궁화보다 키가 훨씬 작으며 집에서 분재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예는 단지 방사선이 농작물과 꽃의 개발에 미친 영향의 소수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본다면 그 규모는 생각보다 많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여러 가지 물건들을 한번 보자.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물건들이 결코 그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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