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동위원소의 DNA를 찾아서(12)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지난 2012년 8월 ‘전설적인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미국 최고 갑부 중의 한 사람으로 밤이면 쥐가 들락거리는 월세 65달러 셋방살이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하였고, 100달러로 처음 시작한 주식투자가 자신만의 투자의 원칙을 지켜온 결과 오늘날의 부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해 더 유명한 이 사람에게 암 진단 소식은 당연히 세간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불치의 암을 충분히 치료가능의 질환으로

일부 매스컴은 이제 버핏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는 섣부른 내용의 기사를 전하기도 했다. 암이라는 불치병에 가까운 질병도 그렇지만 8순을 넘은 나이로 볼 때 앞으로 재기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간의 염려와는 전혀 달리 재기했다. 8주간의 방사선 치료 끝에 “모든 일을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해도 된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완전히 나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전립선 암 1기의 표준치료법인 방사선 치료로 2개월도 채 안 되어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전립선 암은 "좋은 암"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암은 이제 결코 불치의 병이 아니라 충분히 완치가 가능한 질환이다. 

암은 오랫동안 불치병으로 사형선고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치료가능성의 희망을 제시한 것은 바로 방사성동위원소다. [사진=wikipedia]

암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건전한 세포가 알 수 없는 어떤 원인에 의해 이상세포로 변하고, 그것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질병을 뜻한다. 암세포는 최초에 암이 발생한 곳으로부터 림프절(lymph node)이나 혈관 등을 통해 신체의 다른 부위로 전이되기도 하면서 늘어난다.

인체에 생긴 암에 관한 문헌은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의학서로 외상(外傷)의 치료법에 대해 언급한 에디윈 스미스 파피루스(Edwin Smith Papyrus)로 유방암에 대한 언급이 있다.

기원전 1600년경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교재에는 심장박동, 내장 및 혈관에 대한 지식이 담겨 있다. 상처치료를 위해 초보적인 외과기술을 지니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암을 뜻하는 영어의 캔서(cancer)는 게(蟹 crab)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carcinos’에서 유래되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그의 저서에서 여러 종류의 암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

아마 암의 표면이 게딱지처럼 울퉁불퉁하며 딱딱하고, 게가 옆으로 기어가듯 암세포가 금새 번져 나가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암의 세포학적 본태에 대해서는 뮐러(Johanes Muller)가 1838년 여러 가지 종양을 현미경을 통해처음으로 명시하였다.

암을 상피성 악성종양이라고 병리학적 정의를 내린 사람은 독일의 병리학자 비르호(Rudolf Virchow)이다. 그러나 암의 발생원인이나 기원에 대해서는 현대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밝히지 못한 실정이다.

방사선과 동위원소, 암 치료의 선구적 역할

그러나 치료기술은 상당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암이라는 질병은 현재 일반인들의 사망원인 가운데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치료법은 우리들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각종 종양을 포함해서) 암 치료방법들로는 수술적 치료, 방사선 치료, 약물치료가 있다. 현재까지 이 모든 치료법이 놀랄 정도로 발전해 왔다. 특히 방사선 치료기기의 개발로 과거에는 전혀 치료가 불가능했던 종양도 치료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최근 암 백신 개발이 상당한 진척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방암을 비롯해 몇몇 암에 대해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암 백신이 대중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 전까지는 방사선 치료가 최고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암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방사선 치료기술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천연두나 결핵 백신처럼 한번 맞으면 모든 종류의 암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 통치의 암 백신은 불가능하다는데 의견을 모은다.

암 백신 개발은 지금도 요원한 상태

암은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수술하더라도 반드시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대책마련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암세포를 잘라내는 수술적 치료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약물과 함께 방사선 치료가 대신하고 있는 추세다.

동위원소의 핵분열에 의해 나오는 한 방사선을 쪼이면 암세포는 회복되지 못할 정도의 손상을 입게 된다. 특히 빠른 속도로 분열하는 암세포는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성질을 적절히 이용하면 방사선으로 암세포를 파괴하여 암 치료의 길을 열 수가 있다.

세계적으로 매년 500만 명 정도의 암환자가 혜택을 받고 있는 방사선치료는 주로 코발트 동위원소(Co-60)에서 나오는 감마선을 이용하고 있다. 많은 환자들이 치료 후 완쾌되거나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그러나 암세포를 죽이는 일반적인 기술 속에는 더 재미 있고 대단한 것들이 방사선 속에 숨어 있다.

수술칼로 절개하지 않고 몸 안의 종양을 찾아낼 수 있는 최소크기는 얼마나 될까? MRI(자기공명영상장치)나 CT(컴퓨터 단층촬영장치) 같은 첨단영상진단장비를 동원해도 3mm이내 크기의 종양을 진단해 내기는 어렵다는 것이 지금까지 의학계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최근 방사선 의학과 3차원 영상의학의 발전으로 초기 단계인 1mm까지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현재 기술로는 1mm 암세포까지 잡아내

이 기술을 이용해서 인체 다른 부위의 종양발견도 가능하다. 그러나 크기가 작고 뇌 깊숙한 곳을 정밀 진단할 수 있어 특히 뇌하수체 종양발견에 매우 유효하게 쓰일 수 있다. 진단에 사용되는 기기는 이미 국내 병원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MRI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기존 뇌 촬영 MRI 영상처리 소프트웨어가 40초에 걸쳐 3mm두께로 잘라 촬영하는데 비해 이것은 1mm 두께로 촬영이 가능하다. 촬영시간이 짧고 두께가 얇을수록 정밀한 영상을 얻을 수 있으므로 진단 가능한 종양의 크기를 3분의 1가량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Loma Linda University
방사성동위원소는 '방사선의학'이라는 최첨단 의학을 탄생시켰다. [사진=Loma Linda University]

우리나라에서도 실제 이 방법을 뇌하수체 종양이 의심되는 환자 26명에게 시행한 결과 이중 13명에게서 기존방식으로는 진단이 어려운 3mm이하의 종양을 찾아냈다고 한다.

뇌하수체는 뇌의 정 중앙부에 깊숙이 위치한 1츠 크기의 내분비기관. 성장호르몬 등 8가지 이상의 호르몬을 분비해 인체대사를 총지휘하는 사령탑 역할을 맡고 있다.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기면 급작스러운 시력장애와 두통, 거인증이나 유즙 분비증, 얼굴이 둥글어지는 ‘쿠싱 증후군(Cushing’s Syndrome)’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진단법으로 가장 큰 도움을 받게 될 사람은 수유기 여성도 아닌데 이유 없이 젖이 나오는 유즙분비증 여성들이다. 뇌하수체 종양으로 자극호르몬이 과잉 분비되어 생기는 유즙 분비증은 3mm이상 자랄 때까지 혈액 검사상 특별한 이상소견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이 진단법을 이용해 증상이 나타나자마자 바로 확실한 진단을 할 수 있으며 조기수술로 완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MRI나 CT외에도 방사선을 이용한 새롭고 정밀한 진단법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요즘 방사선 의학 검사를 통한 유방암 진단기법이 각광을 받고 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 유방암 유무를 찾아내는 기법으로 신디스캐너(scintiscanner)와 PET(양전자방사 단층촬영)다.

최근 이들이 주 받게 된 것은 유방 진찰과 엑스선 촬영 등 기존 진단법으로 발견해내지 못하는 유방암마저 쉽게 찾아낼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사선을 이용한 새롭고 정밀한 진단법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신디스캐너는 신틸레이션(scintillation, 섬광)과 스캐너의 합성어로 테크네튬 방사성동위원소 Tc-99 화합물을 체내에 투여하여 특정장기에 모이게 한 다음 주사하여 장기나 환부의 영상을 얻는 장치다. 동위원소들은 각각 특정한 장기에 모이는 성질이 있다.

반감기 6시간인 인공 동위원소로도 치료

유방암은 자궁경부암과 위암에 이어 우리나라 여성에게 세 번째로 많은 암이다. 고지방식과 저출산 등 유방암 위험요인과 맞물린 서구화로 조만간 1위 등극이 확실시되고 있는 암이다. 더구나 문제는 우리나라 여성의 유방암 발생패턴이 50대 이후가 많은 미국과 달리 30, 40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

젊은 층의 여성들은 중년 이후 여성들에 비해 유방 내 유선(乳腺, 젖샘)조직이 매우 치밀해 유방엑스선 촬영을 통한 유방암 진단의 정확도(50% 이하)가 훨씬 떨어지게 된다. 신디스캐너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방사선 의학 검사의 하나로 90%를 웃도는 정확도를 자랑한다.

비슷한 원리를 이용한 PET의 활약도 눈부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15명의 유방암 환자들에게 PET를 시행한 결과 100%의 진단 정확도를 나타냈다. 암의 전이여부는 물론이고 겨드랑이 림프절로 암세포가 퍼졌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찾아내 향후 수술범위를 정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고 있다.

덧붙이자면, 검사상 종양덩어리가 관찰되거나 만져지지 않아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은 조기 유방암도 PET 검사에서는 정상세포보다 훨씬 많은 포도당을 흡수하는 유방암세포 특유의 이상 기능이 쉽게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사선 의학 검사가 일반인들에게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취급한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등 평가절하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신티스캐너에 사용되는 테크네슘-99는 반감기가 6시간으로 매우 짧고 가장 약한 감마선만 방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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