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성주 계정리 왕버들은 천연기념물 제403호인 성밖숲 왕버들 군락지에 이어 성주를 대표하는 노거수 왕버들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성주 계정리 왕버들은 수륜면 계정리 620번지, 계정2리 원기마을 앞 왼쪽의 작은 삼거리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처음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거대하고 신령스러운 노거수이다.

1982년 10월 26일에 보호수로 지정된 이 나무는 수령 320년이라고 기록돼 있지만, 가슴높이 둘레가 무려 8.7m 정도나 되는 것으로 미뤄 볼 때 수령 500년은 족히 되어 보인다.

사람의 키 높이에서 벌어진 다섯 개의 굵은 가지가 기운차게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경북 성주군은 이미 왕버들로 주목 받고 있는 지역인데, 천연기념물 제403호인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전국적으로 큰 자랑거리이다.

이 성밖숲은 1380년대에 성주의 지세를 흥하게 한다는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조성되었다.

'경산지(京山誌)'와 '성산지(星山誌)'에 따르면 조선 중기에 성주성의 서문 밖 마을의 소년들이 아무 이유 없이 줄줄이 죽는 등 흉사가 이어졌다.

그 이유가 “마을의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중간 지점에 숲을 조성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지관(地官)의 말에 따라 1380년대에 비보(裨補)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토성으로 된 성주성의 서문 밖 이천변에 지금의 왕버들이 아니라 밤나무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내고 왕버들로 다시 조성하였다.

이 성밖숲 왕버들 군락지에는 맥문동이 밀집해 자라는데, 이 맥문동의 보랏빛 꽃이 필 때면 전국의 사진작가와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이 계정리 왕버들 또한 성밖숲 왕버들 군락지에 이어 성주를 대표하는 노거수 왕버들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수륜면 계정2리 원기(元基)마을은 ‘웃딩기’ 라고도 부른다. 뒷산이 ‘닭이 우는 형상’이라 하여 명계(鳴鷄) 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 ‘딩기마을’ 위에 있다고 하여 웃딩기 라고 칭하게 되었다.

1600년 무렵부터 두릉골(杜陵谷) 두씨(杜氏)와 성산 이씨(星山李氏)가 마을에 들어왔으며, 1700년 무렵부터 사람들이 집단으로 와서 정착하였다고 한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성주에는 고려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는 성산이씨들의 집성촌이 있다.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의 전통마을인 ‘한개마을’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계정리에 입향한 성주 이씨는 쉽게 이해가 가는데, 중국 요(堯)나라 임금의 후예들인 두릉 두씨들이 이 마을에 정착했다는 사실은 의외의 일이다. 

당나라 때의 시성(詩聖) 두보(杜甫)를 비롯하여 두목지(杜牧支) 등은 시문(詩文)으로 명성이 높았다.

우리나라 두씨의 시조는 휘(諱) 경영(慶寧)이며, 송나라 태종(太宗)과 진종(眞宗) 때 예부상서와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역임하였다.

그는 두 아들과 함께 소주(蘇州)로 가려다 폭풍을 만나 고려의 궁지현(宮池縣:현재의 전라북도 김제 만경읍)에 표착하였다.

그리하여 서기 1004년 목종(穆宗)이 궁지현을 두릉(杜陵)골이라 부르고, 두릉(杜陵)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하였다.

바로 이 두릉골에 살던 두씨 중에서 그 일가가 1600년 무렵에 계정리로 들어온 것이다. 

성주군 수륜면 계정리는 고령군 덕곡면 예리와 경계를 이루는 마을이다.

계정리 마을 뒷산에 예리산성(禮里山城)이 있는데, 대가야시대의 석축 산성이다.

성 내부에서 채집되는 유물로 보아 축조 시기는 5세기 말 전후로 추정되는데, 예리산성은 노고산성과 운라산성 중간 지점에 있다.

이 산성은 성주 방면의 대가천 유역을 방어하는 가야산~노고산성~예리산성~운라산성~본관리산성~본관리 옥산성~고령 주산성으로 연결되는 방어선을 담당했던 산성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가야 멸망 이후에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활용되었으며, 현재의 성벽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들이 축조한 것이라고 한다.

<성주 계정리 왕버들>

·보호수 지정 번호 11-21-4-10-3
·보호수 지정 일자 1982. 10. 26.
·나무 종류 왕버들
·나이 320년
·나무 높이 18m
·둘레 4.8m
·소재지 성주군 수륜면 계정리 1697-2
·위도 35.797318 , 경도 128.232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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