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칠곡 석전리 귀암고택 향나무는 귀암 이원정이 심었다는 신비로운 노거수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625번지의 귀암고택(歸巖古宅)은 석전종택(石田宗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귀암고택의 향나무는 수령 350년으로 나무 높이 12m, 가슴높이 둘레 9m인데 종택 안 담장에 걸쳐 길게 누운 채 자라는 모습이 매우 신비롭다.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양의 향나무가 몇 년 전 태풍으로 끝부분이 부러진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칠곡 석전리 귀암고택 향나무는 조선 후기 형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낸 문익공(文翼公) 이원정(李元禎:1622~1680)이 심은 나무라고 한다.

귀암고택 안에 있는 회화나무, 배롱나무 함께 2009년 9월 7일 자로 칠곡군의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향나무는 송죽과 같은 절개를 뜻하고, 회화나무는 벼슬이나 학자를, 배롱나무(紫微花)는 한림(翰林)을 상징한다.

나무 한 그루 남긴다는 것은 백 마디 말보다 시사하는 바가 큰데, 문익공은 이렇게 나무를 심어 후손에게 절개를 지키며 학문에 정진하라는 뜻을 전하고자 했다.

실제로 아들 3형제 중 담명(聃命), 한명(漢命)이 문과에 급제했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귀암고택은 원래 귀암의 장인인 완정(浣亭) 이언영(李彦英)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1670년(현종 11) 이원종이 양주목사 재임 때 돌밭(현 석전리)의 귀바우, 일명 이암(耳巖)이라고 하는 이곳으로 이거했다고 전한다.

현재 사당과 대문채는 1670년대 건물이며, 정침과 사랑채는 상량문에 의하면 1937년 3월 6일 입주(立柱), 18일 재건되었다고 한다.

광주(廣州) 출신인 문익공의 아버지는 부응교(副應敎) 이도장(李道長)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 부인은 벽진이씨다.

어릴 때 매우 총명하여 책을 읽을 때 8행씩 한꺼번에 읽었다고 한다.

1648년(인조 26)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52년(효종 3)에 문과에 아원(亞元)으로 급제하니 31세였다.

검열(檢閱), 교리(校理)를 거처 1660년(현종 1)에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동래부사가 되었고, 재임 중 선치(善治)로 말 한 필을 하사받기도 했다.

이어 강릉 부사, 의주 부윤, 충청 감사, 광주 부윤 등을 지내고, 1670년(현종 11)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양주 목사를 거쳐 도승지에 오르고, 그 후 공조와 병조, 예조, 호조, 형조의 참판, 대사간, 대사헌, 대사성 등을 두루 역임했다. 

1678년(숙종 4) 형조판서 재임 시에는 영남에 대동법을 창설한 치적이 있어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1680년(숙종 6) 이조판서 재임 시에 모함을 받아 경신옥사로 평안도의 초산에 귀양 갔다가 곧 장살(杖殺)을 당하였다.

뒤에 신원 되어 영의정에 추증된다.

왜관읍 석전리에 채제공이 지은 신도비가 있고, 저서로는 『경산지(慶山誌)』 , 『귀암문집(歸巖文集)』 등이 있다.

현재 귀암공 종택은 종손 이필주가 지키고 있다. 조선(祖先)의 유지를 받들며 퇴락했던 집을 새롭게 단장했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특히 이원정의 아들 담명은 경상도 관찰사 재직 때 구휼이 시급한 백성들을 위해 낙동강을 통해 서울로 올라가던 세곡선(稅穀船)의 곡식을 왕의 허락도 받지 아니하고 도민에게 나눠주었다.

하지만 그 현명한 조치가 목민관의 표상이 되었고, 한명 또한 예문관 검열로 보임을 받았으니 석담에 이어 4대가 연이어 한림을 맡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귀암고택 가까운 곳에 이도장, 이원정, 이담명 삼대를 기리는 품(品)자 형의 재사 동산재(東山齋, 경북도문화재자료 제503호)가 있다.

이담명이 승정원 주서 역임 당시 승정원일기를 작성하고자 매일 임금의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하여 남긴 승정원 사초는 매우 귀중한 역사자료이다.

1672년(현종 13) 6월 18일부터 1675년(숙종 1) 5월 8일까지 약 3년간 작성한 기록으로 총 161책이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칠곡 석전리 귀암고택 향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09-19-01
·보호수 지정 일자 2009. 9. 7.
·나무 종류 향나무
·나이 340년
·나무 높이 12m
·둘레 2.4m
·소재지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625 귀암고택
·위도 35.997916, 경도 128.408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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