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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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새 감독에 독일의 스타 출신 클린스만이 선임됐다.

이 소식에 많은 축구 팬들이 강한 불만을 가졌으나 한편으로는 우리의 예산과, 한국축구의 위상을 고려할 때 클린스만 감독 정도가 우리가 임명할 수 있는 감독이지 더 명성이 높거나 실력 있는 감독을 모셔오기는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의견도 나왔다.

이번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과정을 보면서 갑자기 ‘다이버시티 파워’ (The Power of Diverse Thinking)에서 소개된 영국 축구협회의 기술자문위원회 (Technical Advisory Board)가 떠올랐다.

2000년대 들어서 영국축구는 항상 축구의 종가라는 자부심을 가져왔으나 성적은 그만큼 따르지 못했다.

2016년을 기준으로 월드컵에서는 1966년에 딱 한 번 우승했고, 1990년에 4강에 든 후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2020년이 되어서야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렇게 수십년 동안 성적을 내지 못하자 영국 축구협회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다.

사우스게이트를 감독으로 앉히면서 기술자문위원회에 다양한 사람들을 합류시키기로 한 것이다.

예를 들면 스타트업 창업자 마노지 바달 (인도 태생의 사업가이자 벤처캐피탈 회사 창업자, 인도 축구 구단주), 교육전문가 마이클 바버 (교육자이자 토니블레어 총리 재임시절, 총리 산하 공공성과관리조직 수장), 스튜어트 랭커스터 (잉글랜드 럭비유니온 대표팀 감독), 루시 자일스 (영국 육군 장교이자 왕립육군사관학교장) 등이 기술자문위원회에 합류했다.

이렇게 구성되자마자 영국 축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끓기 시작했다.

축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수두룩하건만, 지금 기술위원회를 모두 합쳐도 축구 전문가 한 사람의 지식 수준에도 못 미치는 그런 상황에서 이게 무슨 기술위원회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합류한 개개인들이 무보수로 자원봉사하면서 각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력을 안건마다 펼쳐낸 결과, 적어도 실패는 아니란 점은 명확한 듯 보였다.

럭비감독의 선수 선발 방식, 벤처캐피탈리스트의 혁신 방식, 육군사관생도의 멘탈케어 방식 등은 분명 축구 대표팀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는 것이었으며 적어도 이전보다는 낫다라는 평가를 들었다. (이와 유사한 예로 2008년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한 미국 NBA 선수들의 노력을 그린 ‘리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슈셉스키 코치가 농구 대표팀에게 미국의 숨은 영웅인 군인들의 마음가짐을 듣게 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선수들의 개별적이고 이기적인 마인드를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만약에 이전과 똑같이 축구전문가들로 가득 찬 위원회였으면 어땠을까?

기자들을 우호적인 관계로 만드는 것도 축구 선수출신들이 하고, 조직을 바꾸는 것도 축구 감독 출신들이 하고 멘탈케어도 축구 관계자들이 하는 것을 상상해보자.

물론 축구 그 자체에 대해서는 훨씬 더 전문적으로 보이고 아주 상세한 부분까지 많은 의견이 나왔으리라는 점은 자명하지만, 그 외에 주제에 대해서는 쭉 해왔던 대로 계속 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리라는 것 또한 자명하다.

축구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은 축구를 경험했던 사람들 중에 선진 기술이나 선진 전략을 배운 사람을 조직으로 끌어들여서 책임을 맡기면 꽤나 잘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영국축구협회처럼 조직을 새롭게 꾸린다든지, 기자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한다든지 아니면 선수들의 멘탈 부분을 잡아주는 등 오직 축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중요한 일들은 타 분야에서의 경험을 새롭게 입히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동종선호(homophily)'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동종선호는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경향을 말한다.

대부분 사회에서 성별, 민족이나 국가, 종교, MZ 세대등과 같은 인구 지표, 직업, 소득 수준 등에서 동종선호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집단을 이루고자 하는 성향을 지닌 인간으로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서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겪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협력할 수 있다.

한평생 같은 분야에서 몸 담았던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축구라는 분야에서 지금 성인이 되기까지 같이 지도받고, 같이 훈련하고, 이제는 남을 가르치는 축구인들은 축구인들만의 공통적인 그 무언가가 존재하고, 대부분 앞으로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동종선호는 당연히 어디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왜곡해서 바라볼 필요는 없는데 다만,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아니 해결했다고 생각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던 케케묵은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아예 새로운 접근법을 취할 필요가 있다.

동종선호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다양성을 갖추도록 인위적인 노력을 할 필요 또한 있다는 말이다.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신성장이론의 대가, 폴로머 교수는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아이디어야 말로 경제 전체의 생산능력을 키운다고 하였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이디어 공유를 용이하게 하는 곳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경향을 보인다고까지 하였다.

쉽게 말하면 연구개발을 통한 아이디어가 중요한데, 아이디어는 공유할 때야말로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한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다양성을 접목하는 것이야말로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발전을 이끌어낸는 사실은 경제학 뿐만 아니라 진화생물학, 심리학, 경영학에서도 자주 얘기되는 주제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각 분야에서도 영국축구협회처럼 배타적인 집단에 다양성을 접목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곳곳에서 행해진다면 지금보다 꽤나 많은 머리아픈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을까 한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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