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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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90년대는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그 어느 때보다 훗날 후배 가수들에게 영감을 주는 가수들이 튀어나왔던 때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대부분 ‘서태지와 아이들’을 꼽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뮤지션인 신해철이 88년에 데뷔한 이후 본격적으로 자기 음악을 펼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후 한국 흑인음악과 힙합에 큰 영향을 주었던 듀스가 등장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정확히 듀스가 1993년에 데뷔했으니 바로 올해가 데뷔 30주년이다.

사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듀스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이미 대학생 때라 이러한 스타일의 음악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들의 춤을 따라 할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런데 춤을 잘 추기로 이미 유명했던 내 남동생은 듀스의 춤을 보란 듯이 곧잘 따라하고 잘 추었고, 두 형제가 술 먹고 흥이라도 오르면 꼭 춤을 나에게 가르쳐 주려고 무던히 애썼다.

물론, 몸치였던 나는 아무것도 따라 할 수 없었던 지라, 마지막에는 상대적으로 느린 템포의 곡인 ‘여름안에서’의 후렴에 나오는 체조같은 안무가 있었는데 그거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계속 알려주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TV에서 워낙 많이 봤고, 동작 또한 매우 쉬워서 며칠에 걸쳐서 틈나는대로 동생한테 배웠고, 결국 며칠 후 친구들과의 신나는 모임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보여 줄 기회가 있었다. 그 결과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예상대로다.

많이 본 춤 같은데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여주게 되어 큰 웃음을 주었을 뿐이지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오, 춤 좀 추네’라는 탄성은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유튜브가 지배하는 세상이 된 오늘날, 우리는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그리고 어려워서 아예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 시간과 돈, 발품을 들여 학교, 학원, 아니면 전문가들을 찾아서 용기내어 시도했던 그러한 일들을 동영상을 통해 쉽게 배우게 되었다.

그림 잘 그리는 밥 아저씨가 (밥 로스) TV에 나올 때만 기다렸던 시절과 달리 유튜브 곳곳에 수많은 밥 아저씨가 그림 그리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검색어만 입력하면 어떠한 요리라도 아주 손쉽게 할 수 있는 법을 알 수 있으며, 농구 경기에서 최고의 드리블을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을 알 수도 있으며, 심지어 용접해서 간단한 정자를 만드는 법까지 알 수 있다.

보고 있자면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기에 드디어 나도 누군가를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동네 농구에서 멋지게 가드를 볼 수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 실행에 옮기게 된다.

그런데 혹시나는 역시나이다.

그렇게 자신감 갖고 시작했지만 계란말이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드리블 치면서 3m이상 나아가지도 못한다.

이게 바로 다 유창성 효과 (Illusion of Fluency) 때문이다.

이전 글을 꾸준히 보신 여러분들은 이제 평균 이상 효과 (above-average effect) 정도는 다 안다.

백 회 이상 글을 쓰는 동안 수차례 얘기했으니까 말이다.

교수들은 보통 자기 자신이 남보다 훨씬 더 잘 가르친다고 생각하고, 학생들은 자신이 남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일반 사람들은 남보다 더 자기가 유머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청소년기에 샤워하고 거울을 보면서 이정도면 괜찮은 외모라고 자화자찬했던 기억들이 있는 것처럼 적어도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지.’라고 생각한다.

이와 유사한 효과가 바로 유창성 효과이다.

즉, 남들이 쉽게 하는 것을 보면 나도 저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착각을 보통 유창성 효과라 말한다.

물론, 유창성 효과를 말할 때는 학문적으로 몇 가지 유형을 말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나도 쉽게 유창하게 할 수 있다는 유형, 그리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듣는다 할지라도 그 안에 깔린 논리구조가 그럴 듯 하면 그 주장 역시 믿기 쉽게 된다는 유형도 있으며, 마지막으로 무엇을 접했을 때, 우리의 뇌가 얼마나 쉽게 받아들이느냐 여부가 그 내용에 대한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유창성 효과라고 얘기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회사의 이름이 발음하기 쉬울 경우, 그 회사의 주식을 높게 평가할 때도 있고, 책의 글씨가 이해하기 쉬우면 그냥 그 책이 좋은 책이라고 판단할 때도 있다.

이렇게 뇌가 직관적으로 쉽게 받아들이면 실제 내용에 대해서도 섣불리 판단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도 유창성 효과인 것이다.

처음 얘기를 꺼냈던 남들이 쉽게 하면 나도 잘할 것 같은 유창성 효과를 다시 생각해보자.

이러한 유창성 효과가 단점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유창성 효과 때문에 긍정적인 마인드, 자신감 등이 생겨서 내가 학습하거나 일할 때 훨씬 더 높은 성과를 낼 수도 있다. (물론 실험에 의해 증명된 바이다).

다만 우리는 긍정적인 마인드나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넘어서지는 말자.

그러한 마인드에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져야지만 진짜로 유창해 질 수 있다.

마지막 예로 테드를 들어보자.

테드 강연 하는 사람들 보면 나도 강연을 잘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테드 지침에 강연 1분당 최소 1시간의 리허설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는데 18분 강연이면 거의 20시간에 가까운 리허설이 필요하다.

잘하는 사람은 잘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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