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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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우리 집은 내가 스포츠를 좋아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온 가족이 실제 스포츠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종목 중에서는 특히 구기 종목을 좋아하는데 세 자녀 모두 가장 좋아하는 종목 첫 번째는 농구이다.

이번에 막내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취미로 농구를 즐기는 학생들로 한팀을 꾸려 엘리트가 아닌 실제 순수한 유소년 여자 초등학교 농구대회에 나간다고 하니, 우리 딸의 열정이 장난이 아니다.

대회 출전을 맡은 선생님께서 아직 팀 소집도 안 했고, 선수 모집만 한 상태인데 우리 딸은 벌써 수소문해서 팀 집합시켜 놓고 드리블 훈련을 직접 시킨 모양이다.

그렇게 높지도 않은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조금 해 봤다는 이유로 자신감을 가지고 들떠 있는 모양새가 그리 밉지만은 않다.

그런데, 바로 어제 일이다.

나하고 일반 농구 기본 기술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아빠보다 자기가 더 농구용어를 잘 안다고 하도 자랑하길래 서로 내기를 하자고 하였다. 실제 중학교에서 엘리트 농구를 하고 있는 둘째가 설명을 하고 나와 막내가 답을 맞추기로 한 내기였다.

실제로 단어를 제시하면 나와 막내가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동작을 직접 시연하여 맞추는 것으로 누가 더 많이 맞추냐는 내기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누가 이기고 지고 문제가 아니라 10문제 중 나도 딸도 반을 못 맞추었다.

나는 농구데이터 분석을 실제로 해 본 경험이 수차례 있고, 딸은 1:1 개인 코치를 3개월 이상 받고 있었기에 둘 다 매우 자신있어 했지만 결과는 둘 다에게 실망스러웠다.

이 정도 되면 어떤 분들은 지난번에 설명한 ‘유창성 효과 아냐?’ 라고 짐작하실 수도 있겠다.

남들이 쉽게 하는 것을 보면 나도 저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착각이라고 몇 주전에 얘기한 적이 있는데, 지식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다.

바로 ‘설명 깊이의 착각’(IoED: Illusion of Explanatory Depth)이다.

‘설명 깊이의 착각’은 사람들이 자기가 실제로 아는 것보다 휠씬 더 많이 안다고 하는 착각을 일컫는 것으로 무지에 관한 2002년의 연구로부터 시작됐다.

미국 예일대학의 레오니드 로젠블릿과 프랭크 케일은 실험의 참가자들에게 1(매우 모호함)부터 7(매우 세부적임)의 척도로 당신의 지퍼가 작동하는 방식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를 답하게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지퍼가 작동하는 과정의 단계를 최대한 자세하게 기술하라고 했으며,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는 1번과 같은 질문, 즉 지퍼가 작동하는 방식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를 답하게 했는데 실제로 지퍼 작동원리를 최대한 자세하게 기술하라는 두 번째의 단계를 거치게 되면 스스로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달으면서 점수를 1점에서 2점을 낮추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속도계, 피아노, 변기, 헬리콥터 등 다양한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역시 같았고, 사람들이 신분과 아무 상관없다는 결과 또한 나왔으며, 세금 정책이나 기후변화, 유전자 조작 같은 문제에서도 역시 같은 결과가 나왔다. (설명 깊이의 착각은 아담 그랜트의 ‘싱크 어게인’이나 스티븐 슬로먼의 ‘지식의 착각’이라는 책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결국, 사람들은 무엇을 설명하기 전까지는 무언가에 대해 매우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설명해 본 뒤에는 자신이 얼마나 조금 아는지를 깨닫게 되며 생각이 달라진다.

사람들이 복잡한 세상에서 실제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분명히 진화적인 관점에서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에 선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똑똑하다고 여기게끔 만드는 매개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인터넷이다.

무지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프랭크 케일과 매튜 피셔 등의 교수진이 2015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Searching for explanations: How the Internet inflates estimates of internal knowledge)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게 되면 자신의 지식이 실제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방대하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한다.

온라인 상의 방대한 지식과 자신이 기억하는 지식울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사는 오늘날의 우리는 이전의 우리보다 ‘설명깊이의 착각’에 훨씬 깊게 빠져 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대니얼카너먼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을 보면 셰인 프레더릭(Shane Frederick)의 "인지 반응 테스트(CRT: Cognitive Reflection Test)" 가 나온다. 세 가지 문제로 구성된 이 테스트에서 직관대로 답하지 않고 심사숙고해서 답하여 정답을 맞춘 사람들을 프레더릭은 ‘심사숙고 유형’이라고 부르며 직관적으로 답해서 틀린 사람들과 구별했다.

그런데, 또 다른 연구를 보면 심사숙고형 사람들은 ‘설명 깊이의 착각’에 덜 빠진다는 결과가 있다.

즉, 직관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대한 본인의 지식을 비교적 정확히 판단하여 설명하는 과정을 겪고서도 자신의 점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행동경제학의 대부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을 출간한 이후에도 다른 저술과 강연에서 지속적으로 시스템2를 가동하도록 노력하자는 얘기를 해 왔다.

그 얘기는 ‘설명깊이의 착각’에 빠지지 않고 매우 객관적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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