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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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사회에 나와 첫 직업을 컨설턴트로 택한지 벌써 20년이 넘은 지 오래다.

여전히 정부 프로젝트 위주로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과제를 진행하고 있으니, 이미 인이 박혔을 만도 한데 여전히 발주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떨린다.

특히 중요한 보고를 할 때는 그런 기분이 더욱 들기도 하는데 많은 자리에서 박수를 받고 끝내기도 하지만, 가끔씩 혹독하고 쓴 소리를 들을 때가 있곤 한데 미팅을 갈 때는 혹시 오늘이 그런 날이 아닐까 싶어서 떨린다.

그런데 대부분 클라이언트는 논리적으로 허점을 지적하는데, 아주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자기편향에 빠져서 자기 주장만 앵무새처럼 감정적으로 되풀이 할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십중팔구 남은 잔금 안 준다는 협박을 같이 하는데, 인격적인 모욕과 더불어 금전적인 협박 때문에 회사를 꾸려 가는 나로서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반복되는 셈이다.

그런데,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두려움이 없어지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극복하는 노하우는 있다.

사실 노하우라기 보다 ‘이렇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영향력 편향과 (혹은 충격편향: Impact bias) 관련된 깨달음이다.

영향력 편향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영향력이 실제보다 강하고 오래갈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긍정적인 사건과 부정적인 사건 모두에게 해당한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교수인 대니얼 길버트에 따르면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이 꽤나 대단하거나 오래 걸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 연구해보니 감정의 지속이 의외로 짧았다고 했고, 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지속시간이 짧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내가 내린 결론도 이와 일치하였다.

바로 모욕적인 그 순간에는 스트레스로 열이 확 올라왔지만 다음 날에는 실제로 보란 듯이 웃으면서 얘기할 수도 있었다는 경험 때문에 ‘내일이면 아무렇지 않을거야. 이 순간만 견디면 돼’라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되었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여러 기쁜, 환희에 찬 감정들을 생각해 보자. 드디어 내 반쪽을 찾은 것 같은 사랑의 감정은 (물론, 오래 가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열정보다는 차분함이 더 많이 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자식의 조그만 행동 하나에도 천하를 얻은 듯한 기쁨을 찰나에 느끼기도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기도 한다.

그렇게 이쁘게만 보였던 자식이 다음 순간 큰 실수를 하게 되면 바로 감정은 바뀌게 마련이다. 우리 애가 처음 농구시합에 출전하여 첫 골을 넣었을 때 느꼈던 나의 감정 또한 반나절을 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부정적인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실연에 빠져서 곧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죽을 것 같던 사람들 대부분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흐뭇해 하기도 한다. 이러한 영향력 편향을 우리가 제대로 직시할 수만 있다면 분명히 우리가 세상을 조금 더 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굉장히 안 좋은 일을 겪더라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슬픔이 지속된다면 분명히 우리의 삶에 매우 안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텐데, 우리가 그 순간순간마다 ‘이건 영향력 편향 때문에 과대평가 되었을 뿐이야. 조금 지나면 잊혀지겠지.’라고 자각한다면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슬픔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인간은 감정의 지배를 당하는 동물이다.

지금까지 휴리스틱 종류로 금방 떠오르는 정보를 바탕으로 상황 판단하는 가용성 휴리스틱과 어떤 집합에 속하는 한 특성이 그 집단을 대표하는 특성이라고 간주하는 대표성 휴리스틱만 주로 얘기했지만 또다른 휴리스틱으로 감정 휴리스틱이 있다.

감정 휴리스틱 (Affect Heuristic)은 어떤 대상을 판단할 때, 경험으로 형성된 감정에 따라 평가를 다르게 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로 한 실험에 따르면 기업의 오래된 간부들조차 투자대상 회사에 대한 객관적 수치를 보고 나서도 감정에 따라 투자대상 회사를 결정한다는 결과도 있을 정도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만약 영향력 편향에 휩싸여서 계속 감정에 실제로 지배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십중팔구 감정 휴리스틱에 휩싸여서 매우 비이성적인 판단과 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행운이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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