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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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2023년, 또 새해가 밝았다.

예전 같았으면 12지지의 동물만 가리키면서 토끼 해가 밝았다고 했을텐데 언제부터인가 색을 나타내는 10천간을 앞에 붙이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다고 떠들어댄다.

각설하고, 매년 비슷한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떠들어대도 고객을 끄덕일 만한 주제는 뭐니뭐니해도 작심삼일이다.

우리는 새해가 되면서 몇 가지 그럴듯한 목표를 세우지만 역시나 얼마 못 가 두 손 들고 포기하며 원래 생활로 돌아가곤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지 역시 학문적으로 풀어야 제맛이다.

우리가 진화한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현재까지 살아남은 대부분의 종들은 무언가에 대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할 때, 합리적인 선택보다는 맥락에 따라 급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익숙한 족속들이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증거들을 꼼꼼하게 살피고 정확하게 비교 평가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가져가야 하는데, 과연 이런 과정을 계속 거쳤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때그때 목숨이 걸린 환경 변화에 민감하고 급하게 반응하는 것이 살아나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당연히 후자다.

합리적이고 느긋한 의사결정은 필요 없다.

선사 시대에는 오직 현재를 위한 결정만이 중요할 뿐이다. 당장 살아남아야만 하니까.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렇게 현재 시점에 바로 피해아만 하는 급급한 위험은 거의 없다.

우리가 길을 걷다가 거대하고 포악한 육식동물과 마주칠 일도 없고, 돈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사냥을 며칠 하지 못해 굶어 죽을 위험에 처하지도 않는다.

이 얘기인 즉슨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은 우리의 조상처럼 그렇게 급하게 결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수백만년의 진화과정에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문제를 바로 해결하도록 맞춰져 왔는데 오늘날에는 현재의 목숨을 건 위험보다는 미래에 대한 심사숙고가 더 필요하게 된 상태이므로 여기서 괴리감이 생긴다.

현재를 더 중시하도록 세팅된 뇌, 그렇기에 미래보다 현재를 훨씬 더 소중하기는 여기는 경향, 이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할인 쌍곡선 (Hyperbolic Discounting Curve)’이란 것이 있다.

할인쌍곡선이란 사람들은 당장 실현될 수 이익에 대해서는 더 크고 늦은 이익보다는 더 작고 빠른 이익을 선호하며, 나중에 실현될 수 있는 이익에 대해서는 더 크고 늦은 이익을 선호하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면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당장 3만원을 가질지 아니면 1년 후에 5만원을 가질지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도 당장 3만원을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5년이 지나서 3만원을 가질지 아니면 6년 후에 5만원을 가질지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도 6년 후에 5만원을 갖겠다고 말할텐데 이러한 현상을 할인쌍곡선이라고 한다.

할인쌍곡선에서 말하는 인간은 곧 현재를 중시하는 우리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가올 미래의 보상보다는 현재의 보다 작은 보상에 더 격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게 설계된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꾸준히 오늘날을 희생해서 미래에 큰 보상을 받는 연간계획을 지켜내기는 쉽지 않다. (일반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은 진화한 뇌와는 상관없는 합리적 인간,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은 진화한 뇌를 고려한 인간이다)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 보자.

사실 계획을 세운다는 행동 자체에 들어가는 노력도 만만치 않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평소에 책상에 앉는 시간이 얼마 안 되는 사람들도 새해 계획을 세운다고 책상에 앉아서 차분하게 내가 부족한 부분이 뭔지, 작년에 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계획은 뭐였는지, 최근 새롭게 생긴 나의 부러움과 욕망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 후에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면 몇 가지로 압축해서 나처럼 타이핑을 하든 혹은 종이 정성스럽게 적든, 아니면 더 어린 친구들은 아주 예쁜 글씨로 시간표에 채우든 여러 행위를 공들여서 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들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기’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일까?

연간 계획처럼 내일로 미뤄지는 일들은 일반적으로 쾌락 중추를 건드릴 만큼 즐겁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꼭 지금 당장 처리해도 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연간 목표를 세워 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은 대부분 즐겁지 않으면서 내일 할 수도 있다는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기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내일 할 일은 모레로 미루며, 결국 작심삼일이 되고야 만다.

정리하자면 첫째, 우리는 선사시대부터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현재의 일을 깊은 생각 없이 처리하도록 세팅되어 있다.

둘째, 우리의 연간계획은 보통 도파민을 분출할 만큼 즐겁지 않으며, 내일 해도 무방한 일들이므로 뒤로 미루고 현재의 쾌락에 빠져들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를 잘 기억하면서 진화가 쉽게 주지 않은 의지력과 미래로부터의 보상에 대한 상상력을 다시 한번 풀가동해 본다면 작심삼일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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