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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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2022년 마지막 글을 쓰면서 조금은 거시적인 주제를 다뤄보리라 마음먹고 무엇을 주제로 할 것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전쟁에 관한 의사결정 얘기를 해 보고 싶었다.

행동경제학에서 관심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전쟁의 효용성, 참혹함 등이 아니라 의사결정에 관한 부분이기에 ‘트롤리 딜레마’에 관한 얘기를 구체적으로 다뤄보고자 결심했다.

그런데, 마침 모 방송국에서 ‘트롤리’라는 드라마를 시작했다고 하여 그 드라마의 기획의도를 꼼꼼하게 읽어보니 ‘트롤리 (전기기관차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전차의 폴 (Pole) 꼭대기에 달린 쇠바퀴. 하지만 보통 트롤리 딜레마에서의 트롤리는 전차라는 의미로 해석함) 딜레마’라는 용어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하며 ‘전차가 그대로 직진하면 내가 꿈꿔왔던 세상이 파괴되고, 전차의 궤도를 바꾸면 꿈꾸던 세상이 만들어지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수 있는 선택의 순간에서 레버를 어떤 쪽으로 당기는지를 그렸다’라고 적혀 있다.

사실 드라마의 기획의도는 그럴듯 하지만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 내게 소중했던 사람들을 버릴 수 있다는 내용이므로 기존 드라마의 서사와는 별반 다르지 않을 듯 싶다.

다만, 얼마나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느냐 혹은 배우들이 그 감정의 고뇌를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에 따라 성패가 결정될 듯하다.

그런데 보다 전문적으로 트롤리 딜레마에 대해 들어가면 위의 드라마 기획의도와 같이 간단한 내용이 아니다.

트롤리 딜레마는 철학, 윤리학의 문제이고 벤덤의 공리주의와 칸트의 의무론이 부딪히는 문제이다.

그리고, 윤리학의 문제이므로 이는 생명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며,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영역에서 연구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우선 트롤리 딜레마 (Trolley dilemma) 혹은 트롤리 문제 (Trolley problem)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자.

원래는 탄광수레가 달려올 때, 두 갈래에서 한 쪽은 소수의 사람, 나머지 한 쪽은 다수의 사람을 살릴 수 밖에 없을 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대한 윤리적 문제에서 출발한다.

트롤리 딜레마 관련한 가장 유명한 실험은 바로 ‘필리파 풋’에 의해 행해진 실험이다. (‘The Problem of Abortion and the Doctrine of the Double Effect’, Philippa Foot)

이 실험의 가상 시나리오에서는 폭주열차가 등장할 때 오직 두 개의 선로 중 하나의 선로로만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가정한다.

현재 폭주 중인 그 선로에는 다섯 사람이 있고, 나머지 선로에는 한 사람만 있을 때 한사람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다섯 사람을 구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때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보통은 한 사람을 희생하여 다섯 사람을 살리는 쪽을 택하게 되는데 이는 공리주의에 입각한 결과이다.

모든 사람의 목숨을 등가로 생각할 때 이런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한명한명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면 달라진다.

우리는 각 사람의 정체성을 알게되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공감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공감은 의사결정 시 올바른 결론을 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편향으로 나타나게 된다.

만약 다섯 명이 70세 이상의 노인이고 한 명은 어린아이라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냉철하고도 합리적인 계산으로 70세 이상의 남은 기대 수명의 총합이 35년이고 아이의 기대 수명은 60년이라고 하면 누구를 구하는 것이 적합할까?

혹은 사회집단에서 다섯 명의 노인들에게는 자식이 한 명 있고, 한 명의 아이가 향후 자식과 손자까지 낳아서 총 10명의 자손이 생기게 된다면 어느 편이 사회를 위해서 도움이 될까?

그리고, 다섯 명은 경범죄를 지은 5명의 수감자들이고 한 명은 교도관일 때 어느 편을 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의사결정일까?

이렇게 한명한명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알아버린 순간 의사결정의 고통은 시작된다.

정체성을 파악했을 때, 나와 관련이 있다면 얘기가 또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나의 친구가 있다면, 더 나아가 나의 가족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2010년에 발표된 한 연구를 보자 (Evolution and the Trolley Problem: People Save Five Over One Unless the One is Young, Genetically Related, or a Romantic Partner)

연구 부제에서 보시다시피 한 명이 친척이거나 애인이거나 하는 경우도 포함되는데, 이 경우에는 다섯 명보다 한 명을 구하겠다고 한 응답자가 더 많이 나타났다.

몇 주 전에 글에서 쓴 ‘내집단 선호 (Ingroup favoritism)’ 현상이 여기서도 나타나게 된다.

여기까지는 실험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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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상황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는 의사결정의 순간이 실생활에서 자주 나타날 리는 없다.

이러한 의사결정의 순간은 전장에서 나타날 수 있다.

다섯 명이 군인이고 한 사람이 민간인일 경우 누구를 구해야 하나?

아마도 민간인 한 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그렇다 하더라도 직업이 군인일 뿐인데 민간인 한 명을 구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더 나아가 다섯 명은 우리나라의 군인이고 한 명은 적국의 민간인이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이렇듯 정체성에 따라 우리의 선택은 실제에서도 너무 어렵게 된다.

실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서도 충분히 나타나는 사례들이다.

트롤리 딜레마 실험의 선구자격인 ‘필리파 풋’은 이중 효과 원칙 (Doctrine of the double effect)’을 딜레마의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처음 언급한 이 원칙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좋은 결과를 위해 나쁜 행위를 의도하는 것은 그르지만 선한 행위가 때로는 나쁜 결과가 예견되었음에도 그 행동을 피할 수 없었다면 허용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결과보다는 행위의 선악에 대한 보편적 기준이 존재한다’고 보는 도덕적 절대주의자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견해이다.

이러한 해결책은 옳은 것인가?

머리 아프지만 생각해 볼 문제이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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