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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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연말연시 정치권을 보면 ‘낙인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물론, 아주 이전부터 ‘누구가 어떤 사람이다’라고 하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거나, 거짓 누명을 만들어내는 일은 쭉 있어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낙인을 찍어버리고 우루루 달려가서 린치를 가하는 그런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누누이 말해왔듯이, 이는 온라인 상에서 알고리즘이 강화시키는 확증편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 정치권에서 이를 악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현상이 빈번하게 벌어지게 된다.

이렇게 ‘A라는 인물은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보통 그 사람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그를 묘사하는 내용을 자주 들을 경우, 실제로 그런 인상을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게 되기 때문인데, 이를 우리는 보통 점화 효과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라 한다.

점화효과는 사전적으로 ‘하나의 자극 (Prime)이 의식적인 지침이나 의도 없이 후속 자극에 대한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한가지 정보가 자극을 받으면 관련된 기억이 함께 떠오르는 것으로, 먼저 제시된 자극이 나중에 제시된 자극의 지각과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촉진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누군가에 대해 ‘조심성이 없다’고 소개한 후 그 사람이 익스트림 스포츠 (위험, 극한을 추구하는 스포츠)를 한다고 얘기하면 그 사람을 무모하다고 여길텐데, 같은 사람에 대해 ‘자신감 있다’라고 소개한 후 익스트림 스포츠를 한다고 얘기하면 모험심 강한 멋진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버진그룹의 설립자이자 괴짜 CEO로 잘 알려진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은 익스트림스포츠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에 대해 비아냥거리거나 무모하다고 여기는 것보다 자신감있고 과감한 멋쟁이라고 인식하듯 말이다.

리처드 브랜슨이 기존 버진그룹에서 버진갤럭틱을 설립하고 2021년에 민간 주도 첫 우주여행을 시도했다는 내용을 알면 그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성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선후가 바뀌어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점화 역할을 해서 그의 우주 사업이 일견 탁월해 보일 수도 있으며, 반대로 우주 사업을 한다는 점을 먼저 알고 있으면 그 사실이 플러그 역할을 해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더라도 충분히 그 사람다운 멋진 취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화효과를 우리는 새해에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활용해 보자.

어떤 사람에게 어떠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주면 그 사람이 수용하는 다음 정보와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치니 말이다.

즉,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너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자극하면 실제로 그 사람은 ‘나는 그런 사람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유명대학의 심리학자들이 모여서 한 유명한 실험을 예를 들어보자. (Breaking the Cycle of Mistrust: Wise Interventions to Provide Critical Feedback Across the Racial Divide)

이 실험에서는 미국의 7학년 학생들이 작성한 에세이에 대한 평가를 다양하게 진행하였으며, 실험 결과 소위 ‘현명한 피드백 (Wise feedback)’이라고 불리는 특정한 피드백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에세이를 더욱 자주 수정하여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와이즈 피드백’ 내용을 보면 사실 별거 없다.

내용은 이렇다.

“이런 코멘트를 하는 이유는 내가 당신에게 높은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충분히 그 기대치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I’m giving you these comments because I have very high expectations and I know that you can reach them)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이 한마디로 학생들의 노력과 보다 높은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물론, 이는 점화효과에 관한 실험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했을 때, 그에 따라 행동과 성과가 달라짐을 보여준다는 점에 비춰보면 이 역시 ‘점화효과’의 하나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나와 같이 세배를 받는 나이가 된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번 새해 덕담으로 ‘새해 복 많이 받고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해라’라는 말을 조금은 바꿔 보자.

새해인사를 하는 아이들의 현재 처지와 좋아하는 일, 특성들을 알고 덕담을 그에 맞게 해보는 것 어떨까?

이를테면 나는 이제 야구선수를 시작한 내 조카에게 이렇게 할 얘기하려 한다.

“네가 이제 투수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누구보다 힘껏 던지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는데 잘 택했다. 올해는 누구보다 강하고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을거야”라고 점화 플러그를 심어 놓아 볼 생각이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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