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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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 우리가 잘 아는 한신과 유방에 관한 고사가 있다.

사기 ‘회음후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언젠가 유방 (한 고조)이 한신에게 술자리에서 본인과 한신이 거느릴 수 있는 군사 수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한신은 ‘폐하는 10만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다’고 하면서도 본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했다. (다다익선이라는 고사가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랬더니 유방은 다시 묻기를 왜 내 밑에 있냐고 하자 '폐하는 장수를 부릴 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에 하나회 척결 때문에 다시 재평가 받는 김영삼 대통령이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하나가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었다고 하는데, 다른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인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하니 핵심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바이다.

그런데, 요새 들어 국정 운영에 있어서 부쩍 인사 실패가 눈에 띈다.

사실 인사 실패인지도 모르겠다.

적재적소에 사람 배치를 제대로 못한 문제인지 아니면, 임명해 놓고도 그 사람들에게 일을 제대로 맡기지 못한 문제인지 구분을 정확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인이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크게 잘못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 정책들은 몇 가지가 있다.

정치적인 부분들을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4조 6000억원 삭감은 대부분 전문가들이나 언론도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이고, 군 장병 정신교육 교재에서 독도를 영토분쟁지역이라 표현했던 사건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를 포함한 대다수 정책의 실패는 일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의견이 그대로 들어가거나 혹은 지금 그 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이 전문가가 아니거나 하는 둘 중 하나의 문제이다.

무엇이 이유가 되더라도 변치 않는 결론은 정말 누군가가 반발이 일어날지는 생각조차 안 해보고 무식하게 일을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을 실험으로 증명한 결과가 바로 ‘더닝크루거 효과 (Dunning-Kruger Effect)’이다.

코넬 대학교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더닝이 1995년에 은행강도가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로 은행을 털다 걸렸는데, 그 이유가 얼굴에 레몬주스를 뿌리면 감시카메라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보도를 보고 이와 관련된 연구를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제자 저스틴 크루거와 함께 학부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 성적이 낮은 학생일수록 자신의 성적이 높을 거라고 생각하고, 성적이 높은 학생은 자신의 예상 성적이 낮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과를 얻었다.

이와 유사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총을 잘 아는 사람은 총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렇게, 더닝크루거 효과라 함은 무식하면 용감하고, 알면 겁쟁이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나의 예전 생각을 해 보면 너무나도 들어맞는 효과이기도 하다.

내가 컨설팅을 시작하던 지금부터 25년 전에 내가 만들어 낸 결과에 대해 왜 그렇게 자신이 있었는지, 그리고 1년 후에 똑같은 결과물을 봤을 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가 아직도 생각난다.

남들보다는 조금 더 이른 시점에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 왜 그렇게 사업이 승승장구할 거라 생각되었는지도 생각난다.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덤비고, 나이 들어서는 조금이라도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쉽게 덤비지 않는 모습은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겪는 더닝크루거 효과이다.

더닝과 크루거 박사는 이후에도 수년간 유사한 주제로 계속 실험을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내린 결론은 숙련된 전문가는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자신을 평가하여 열등감에 빠지고, 초보자는 평가 기준 자체가 없거나 낮아서 오히려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더닝크루거 효과를 그래프로 나타낼 경우, U자형 커브를 그리게 된다.

가로 축은 경험, 세로 축은 자신감을 나타내는데, 경험이 많을수록 자신감이 낮아지다가 끝에 가서는 회복하는 형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의 높이는 초보자일 때 자신감의 높이보다 낮다.

사실 내가 국가 R&D 과제를 수행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나는 R&D 예산 삭감 정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닝크루거 효과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기술연구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무턱대고 ‘겁도 없이’ 예산을 삭감하지 않았나 싶다.

이것도 큰 문제인데, 전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 외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우리나라 중요한 외교 문제, 국방 문제, 군비 문제 등을 다뤘을 때 더닝크루거 효과가 나타나게 되면 자신감으로 가득찬 상태여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우리의 생명이 걸려 있기에 더욱 두려운 일이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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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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