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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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 며칠 전의 일이다.

프로젝트 관계로 상암 월드컵 경기장 쪽에서 일을 보고, 저녁 약속 때문에 강남 쪽으로 운전해서 이동하는 중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가나 싶었는데, 가다 보니 교차로에서 어느 순간에 차가 꽉 막혀 있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계속 움직이면 갑작스런 병목현상 때문에 차가 천천히 진입해서 그런가 보다 할텐데, 정말 몇 분간 안 움직이다가 3m 정도 전진하고 다시 멈춰 버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새 예상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도착하는 것으로 안내 받았다.

그런데, 그 이유를 조금 후에야 정확히 알게 되었다.

교통경찰차가 앞에 있고 아예 차로를 막고 있다가 차 한 대를 보내고 다시 몇 분간 막고 있다가 한 대만 보내고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결국 한 대씩 보내다가 내 차례까지 왔다. 앞에서 봉을 들고 막던 경찰에게 수고한다고 말하면서 “무슨 일 있나요?”라고 말하니, VIP가 지나간다고 했다.

뭐, VIP 지나가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차를 보냄과 동시에 통제를 풀어서 내 뒤에 있는 차들은 쌩쌩 달려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보며 나는 조금은 심통이 났다.

“아니 내가 지금까지 기다려왔던 고통을 뒤에 있는 차도 겪어야지 왜, 나만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생을 했지?” 내가 아팠으니 남도 아팠으면 하는 막돼먹은 심리의 발현이었다.

그런데, 차에 동승하고 있었던 우리 직원은 갑자기 웃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상황이 웃긴걸까라고 생각하며 물었더니, 조금 전에 기다리다 지친 내 바로 위에 있는 차에서도 저 멀리 경찰을 향해 “도대체 왜 막혀요?”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차부터 갑자기 교통이 풀려서 그냥 휙 지나가게 되었고 뒷 차는 궁금증을 풀지 못한 채 통과하였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냐는 것이었다.

듣다 보니 일리가 있었다.

왜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뭔가 알고 지나가야 하는데 알지 못한 채 지나가면 하루종일 생각나고 뭔가 찜찜한 그런 감정 말이다.

그래서 모른 채 하루 종일 도대체 왜 그랬을까를 고민할 뒷 차를 생각하니 너무 웃긴다고 했다.

사람의 심리가 이렇다.

우리는 분명 같은 상황을 보고 경험했으며, 방금 전의 일이라 서로 잘못 보거나 기억이 왜곡되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정이 상했고, 동승한 직원은 즐거웠다.

물론, 원인은 타인이었다.

나는 타인도 고통을 받길 바랬고, 직원은 타인이 충분히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타인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나보다 타인이 행복했다고 생각했고, 직원은 타인이 나보다 고통스러웠다고 생각했다.

그러하기에 나는 상대적으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직원은 상대적으로 우리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유레카’ 정도는 아니지만 그 날 생각을 정리해 보니,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얻었다.

같은 사건에서 나는 아쉬웠고, 직원은 안도했다. 나는 감정이 상했고, 직원은 즐거웠다.

이게 행동경제학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라는 용어가 있다.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를 뜻하는 말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말과는 반대되는 의미의 말이다.

흔히 말하는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라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와는 의미가 다르다.

내가 도로에서 겪었던 상황에 비유하자면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던 내 뒷차들 때문에 기분이 상했으므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팠던 경우이고, 내 동료는 우리는 이유를 알고, 나머지 뒷차들이 이유를 몰라서 그들이 불행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바로 “샤덴프로이데”에 해당하는 경우였다.

2013년 미나 시카라와 수잔피스케의 실험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남들에게 행복한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불행한 일이 생기는데 더욱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좋아함을 알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실험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만한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불행에 더욱 행복해 하였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샤덴프로이데 (논문 제목 자체가 “남들의 고통, 우리의 즐거움: 고정관념과 샤덴프로이데” 이다)는 내가 진짜 나쁜놈이라서 그러기보다는 그냥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성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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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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